"파친코"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유튜브를 시청하다가 우연히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 영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한국인처럼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외침은 당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평화에 접근하는 길"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파친코는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현재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억압받는 민족과 소외받는 계층의 삶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어 켰습니다. 애플TV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의 안방에서 나라를 잃고 떠돌았던 한국인의 설움과 끈질긴 삶의 역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이니치" 우리에게 생소한 재일 동포의 일본식 표현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고 그들의 아픔을 가슴 깊이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시울을 적시며 책을 놓았습니다. 억압의 시대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아픔을 그저 피상적으로 바라본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남북으로 갈라지고 일본으로 만주로 시베리아로 뿔뿔이 흩어져 온갖 핍박을 받아온 민족. 모국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한민족의 혼을 간직해온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자존과 긍지를 되살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기에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이 소설의 시작은 19세기 말 외세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점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민중의 삶은 언제나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되었던 당장은 먹어야 살수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세월일지라도 한민족의 부모는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진자리 마른자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천 년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의 특성이며 국가와 종교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질서를 지켜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회가 사상이나 이념에 경도되어 어느 일방에 의해 성립되거나 일부 세력의 이익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나가간다면 대중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힘없는 서민의 삶은 더욱 핍박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인류 역사의 교훈은 무능하고 힘없는 지도자를 가진 나라의 민중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언제나 핍박받았고 사지로 내몰렸습니다. 일제강점기 현명하지 못했던 지도자들 때문에 나라를 잃고 떠돌 수밖에 없었던 한민족의 처절한 아픔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정치적 현실은 슬며시 보여줄 뿐 단한번도 지도자를 탓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되었던 현실은 늘 코앞에 있고 그 속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세상 어디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정서가 이 책을 읽는 전 세계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공감을 이끌어 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억압과 핍박 그리고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자이니치" 즉 재일 동포의 삶은 그동안 유대인과 흑인으로 대표되었던 소수민족과 비주류 계층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저의 관점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같은 민족으로서 뒤틀린 역사의 뒤안길에서 해외로 흩어진 동포들의 아픔을 너무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자이니치"는 일본에서 태어나도 국적을 취득할 수 없습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불순분자라는 누명을 쉬워 수천수만 명의 조선인이 죽창으로 학살당했고 온갖 멸시와 조롱 속에서 일본 사회의 밑바닥을 전전해온 그들의 아픔은 형언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소설의 집필 배경으로 1989년 일본에서 발생한 13세 "자이니치" 소년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순수 혈통을 강조하는 일본 특유의 폐쇄적 환경 속에서 "이지메"로 내몰렸던 한민족 학생은 결국 건물의 옥상으로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끝끝내 살아남았습니다. 많은 "자이니치"들이 질시와 멸시 속에서 야쿠자가 되었고 빠칭꼬를 운영하면서 가족을 지켜내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귀화라는 방법으로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인이 되었지만 한민족의 뜨거운 피가 바뀌지는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국력이 약해서 자초한 일을 언제까지 이웃 나라만 원망하고 탓하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빈껍데기 사과를 바라지도 말고 용서를 거론하지도 맙시다. 다만 기억합시다. 그들이 저질렀던 행동 하나하나를.
조국의 앞날과 미래 세대를 위해 가까운 나라와 협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강해져야 됩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 지도자는 사자 같은 용기와 여우 같은 간교함"으로라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민생을 안정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한민족은 유사 이래 수천 번의 칩입을 받아왔지만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해 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한국인처럼 만들고 싶다. 그것이 평화에 접근하는 길이다."
[아제생각]은 석가명차 오운산 최해철 대표가 전하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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