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서울 관훈클럽 2층에서 (사)전통문화원의 주최로 한국 차도구 명칭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차도구 명칭 시고’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발표는 “차문화기록가” 제가(박홍관) 맡았으며, 한국의 전통 차 문화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차도구 명칭 체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발표에서는 1980년 한국차인회가 정립한 차도구 명칭과 1984년 차인들이 연구했던 명칭을 참고하여 한국 차도구의 명칭을 체계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특히 기존의 '사발'이 아닌 '다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운두', '전'과 같은 찻잔의 굽과 관련된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며 주목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명칭들은 한자어 조합형 설명에서 벗어나 순우리말을 사용하여, 한국 전통 차도구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잘 담아내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전통 차 문화가 한국어로도 쉽게 접근 가능하고 문화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용어 체계를 제안한 것이다.
한국 차도구 명칭 연구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으며, 연구 환경 역시 열악한 실정이다. 하지만 고유한 명칭의 정립이 지연된다면 한국 차 문화 연구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워지며, 외래 명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한국 차도구 명칭 체계의 기초를 다지고, 나아가 한국 차 문화의 학문적 독립성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향후 한국 차도구 명칭 연구는 학문적, 문화적 관점에서 더욱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하며, 전통 차 문화의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연구 분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10월26일부터27일까지 안동 용수사에서 열린 "오양가의 아름다운 산사 등불 차회" 문화 공연은 다양한 예술과 전통이 어우러진 수준 높은 행사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주요 행사
공식 행사로는 100家茶 108人의 헌공다례가 열렸다. 이 의식에서는 도향의식과 행향례를 중심으로 원행회주 스님과 향 시자(문향회 용경숙) 의식을 진행하였으며, 이어 등공양, 꽃공양, 차공양 순서로 차례로 공양이 진행되었다. 차와 함께하는 산사의 고유한 의식과 정성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주목받은 공연
오양가 원장님이 준비한 여러 공연 중에서 특히 주목받은 두 공연은 토브뮤직컴퍼니의 "찾아가는 음악회"와 지윤 스님의 비천무(살풀이) 춤이다.
1. 토브뮤직컴퍼니: 오창오 대표가 이끄는 이 단체는 성악 토크 콘서트 형식의 공연으로, 사찰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성악의 매력을 전달하며 참가자들에게 참신한 경험을 선사했다. 약 50명의 참가자가 함께한 이 공연은 찾아가는 음악회 프로그램 형태로, 청중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2. 지윤 스님의 비천무(살풀이): 작년 칠불사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지윤 스님의 살풀이 춤이 참가자들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이 공연으로 오양가 원장님과의 인연을 더욱 돈독하게 했다. 그녀의 춤은 차회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강한 정서적 울림을 주었으며, 살풀이 춤을 통해 전해진 그녀의 감정과 표현력은 산사 차회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산사 차회의 의미
이번 공연은 안동 용수사와 차인들의 헌신 덕분에 “오양가의 아름다운 산사 차회”라는 전통을 이어가며, 문화와 예술이 조화롭게 융합된 감동의 순간을 선사했다. 차회 문화가 가진 예술적 가치와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다.
-------
전시 협찬: 가은요 박연태, 모언도예 구경찬, 심농도예공방 이태경, 고은영(흑임자 꽃자수다식)
제7회 경주세계차문화축제가 한국‧중국‧일본‧대만‧칠레‧미국 차인들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쳤다. 보문호반 둘레길에 67개의 찻자리가 마련되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행사는 마칠 때 까지 여러차레 비가 내리다 거치기를 수 차례 반복하였지만 부산 경남 일대에서 손님은 계속 모여 축제는 성황을 이루었다.
경주세계차문화축제의 성공 비결은 조직윈원회 김은호 회장과 김이정 관장의 추진력, 아사가차회 회원들의 봉사 정신과 단합된 힘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이번 축제에는 전체 67개팀 중에서 해외 23개 팀, 국내 44개팀이 참가했다. 국내 팀은 44개로 올해 처음 참여한 강릉 신사임당, 석가명차 본사, 대전 설조산방, 구례 고차수 등 차 교육 단체 및 차 전문점의 참여로 행사가 더욱 빛나게 되었다.
축제의 시작과 함께 대만 신온가무고수정(대표, 안청옥) 부스에서 삼화령 미륵세존 진영 전달 차회가 열렸다.먼저 이상호회장께서 인사말을 통해 차문화 발전 전략을 밝히셨으며,내년 대차회의 기운을 경주의 주요 인사들과 함께 나누었다.
외국 참여자는 중국과 대만, 일본, 미국, 칠레 등의 부스에서 그분들이 준비해온 다양한 차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문화적인 요소는 중국 베이징에서 온 송대 점차법을 재현 발표한 观合(관허) 선생과 일본의 부쿠부쿠 찻자리가 호응을 받았다.
또한 아사가차관 이재란 선생님의 부스에서 한국차와 인도차를 내는 자리에서 차 교육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보이차 73청병 찻자리는 보이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여한 향산재, 여여해, 진귀명차 등의 부스에서도 각자의 관심사를 가지고 차를 음미하면서 상담도 하는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외국 참가자는 대만오룡, 광동오룡 등의 청차와 보이차로 다양하게 참여했다. 대만에서 매년 참가하는 업체로는 운전전차, 신온가목고수정 부스로 매년 방문객들로 부터로 관심을 받고 있다.
행사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구매하여 차 마시는 시간을 즐겼습니다.축제를 주관한 김은호 회장님,김이정 위원장님,그리고 아사가차회 회원들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20일 저녁, 이태원 자택에서 체취를 느끼며 하룻밤을 지내었고, 21일 서울추모공원에서 하늘로 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오늘 밤, 아니 어쩌면 내일 밤 자정을 지나는 시간 “고 회장 늦게 전화한 것 아니요“. 하며 전화가 올 것 같기도 하다.
‘워싱턴타임스재단’ 양창식 이사장은 추모사(대독)에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논한 ‘민주화 이전에 먼저 가난을 해결할 산업화를 추진해야 한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보릿고개를 넘지 못한 1960년대, 조국의 부름에 대한민국을 도왔지만 끝내 성숙하지 못한 정치계 희생양이 되셨다. 하면서 당시 재벌의 아들이자 초엘리트 청년이 무슨 돈이 필요하여 로비스트의 길을 걸었겠냐. 반문,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했다.
회장님은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를 다니던 1952년 도미, 에디슨하이스쿨을 거쳐 1955년 조지타운대학교 입학, 학생회장을 하였고 1959년 졸업하였다. 스물여섯 나이인 1960년 워싱턴에서 한선기업 창업, 1965년 미국 영주권 취득, 1966년 오늘날 세계적 사교클럽이 된 조지타운클럽을 설립하면서 조국의 근대화를 도왔다.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 신생국가 젊은이가 혈혈단신 서울에 와서 명문대학교 입학, 학생회장이 되고 스물여섯 나이에 기업창업, 서른두 살에 한국의 지도자 자녀들을 모아 사교클럽을 만들었다. 한다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 것이다.
하지만 회장님 삶의 여정은 팩트다.
1975년 뉴욕의 한남체인을 인수 합병한 한남체인그룹 회장, 미륭그룹 회장, 숭의학원 이사장, 한국빙상협회 회장, 한국蘭협회 회장, 한국茶인연합회 이사장, 유엔사무총장 고문, 조지타운클럽 명예회장, 파킹톤 회장, 근년에는 한국당뇨협회 회장, 청산포럼 회장 등 여러 직함이 있지만 가장 좋아하시는 닉네임은 차인 또는 민간외교관이다.
김성진 문공부장관 부탁으로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수상작품 전부를 구매해준바 그 격려금을 종잣돈으로 해서 오늘날 한국의 최고 장인이 된 김성수 옻칠장이나 박찬수 목공예가 이야기, 간경화로 고생하던 박수근 화백에게 당시 집 한 채 값인 25만환을 조건 없이 후원하였더니 박 화백이 고마움의 표시로 리어카에 그림을 가득 싣고 와 회장님께 드린 가슴 뭉클한 일화,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 복원과 한국 최초 차잡지인 다원지 발행을 후원하였던 이야기도 있다.
정부의 부탁이었던, 쌀수입에 관한 정확한 내용, 원자력 발전의 기반을 위하였던 일, 카트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 때의 역할, IMF 외환위기와 전작권 연기에 관한 스토리, 유엔사무총장 선거와 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 선거를 도왔던 이야기, 팔순 중반의 연세임에도 한일 냉각을 풀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첨예의 인맥 외교나 천궁-Ⅱ를 위하여 수차례 아랍에미리트를 다녀왔던 활동, 국가간 우애를 위하여 주한 외교사절들을 가족처럼 돌보았던 민간외교는 왜 보도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필자는 2012년 12월, 중국 인민출판사 부탁을 받아 역사 이래 전무후무할 박근혜 대통령 전기 중국어 번역출판에 참여하였다. 2013년 3월 20일 북경 주중한국문화원에서 출판식을 하면서 회장님을 모시고 갔다. 그 자리에는 인민출판사 사장을 비롯 한중 30여 곳 언론사 기자들이 있었고 이규형 주중 한국대사, 중국의 쉬부 북핵6자 차석대사, 심정창 북경대학 한국연구센터장 등 약 100여명 함께했다.
회장님께서 박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을 소개하며 한중관계가 잘되면 좋겠다. 라는 통상적 축사를 하였는데 3월 23일자 한계례 신문에, 코리아 게이트 박동선, ‘박근혜 중국어판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박 대통령 찬양, 박정희 지시로 미 정치인들에 뇌물 뿌린 인물! 이란 제호와 함께 황당한 보도가 나왔다.
‘박근혜 인생’이라는 제목의 전기는 박근혜 자서전으로 둔갑 되었고, 『이 책은 한국차문화연합회장 고성배 선생의 노력으로.. 』 이라는 서문도 읽어보지 아니했는지 본 건과 아무 관계없는 한국차문화협회를 들먹이고, 회장님은 그 단체 이사장도 아닌데 이사장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고 허위 보도를 했다.
한국의 대통령 자서전 번역출판도 잘 허용하지 않은 인민출판사가 필자에게 8% 인쇄비를 어떻게 지급하게 되었는지, 책의 내용은 어떠한지, 축사자들은 어떠한 한중관계를 원하였는지, 행사장에서 한국의 다례를 발표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지? 보도용 자료가 차고 넘치는데도 말이다.
”제가 괜히 북경으로 가시자 했네요.” 하였더니 “괜찮소. 큰일을 하다 보면 더한 불편한 이야기도 듣게 될 터이니 신경 쓰지말고, 앞으로도 내가 필요하면 이야기하세요“ 하셨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건으로 한일관계가 극으로 치닫던 2018년 8월 1일 일본에서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당시 중의원 12선)이 200여 명 계파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을 이끌고 서울로 2박 3일 수련회를 나왔다. 일본 중진 국회의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과정,
“나는 자주 만나지만 고 회장은 그러하지 아니하니 간사장 옆에 앉으세요” 하시면서 자리를 권하기에 ”아닙니다“ 하며 필자는 피하고, 회장님은 권하고.. 니카이 간사장이 자리에 앉지 못하고 주춤하던 일이 생각난다.
얼마나 후배를 아끼고 배려하는 성품의 소유자이신가.
경상남도와 창원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차문화 유네스코 공동등재라는 주제를 두고 10개국(현장 8, 영상2) 참여하는 ‘세계차문화산업학술대회(2023.5.13.~5.16)를 창원컨벤션에서 개최하였다. 차문화史 최초의 10개국 대회였다.
세계적인 인사의 축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부탁드렸더니, 미국 찰스랭글 전 의원(하원 23선)과 일본 스즈키 무네오 참의원(중의원 8선, 참의원 2선)께 축하 영상을 받아주셨다.
찰스랭글 의원은
세계차문화산업학술대회를 후원하는 나의 친구 박동선님과 여러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차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물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료입니다. 따뜻함과 사랑,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맛의 느낌, 그리고 차의 표현 등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
정말로 차는 훌륭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세상에 주는 아주 큰 선물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 속에서, 저는 세계의 차 애호가들이 함께 모여 차의 미래를 논하고 부모에게 사랑과 차를 선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차문화 운동은 전쟁의 스트레스와 긴장과 의견 충돌도 끝을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대회를 개최하면서 여러분 자신과 국가, 그리고 세계를 위하여 노력하시는 위대한 일에 제가 작은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찰스 의원님은 1930년생이니 95세다. 6.25 참전용사다. 1분 40초밖에 되지 않은 짧은 축하 영상이었지만 우리 차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1960년대 우리의 국민 개인소득은 100달러대이었다. 1970년도에도 255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굶주린 근대사를 잊을 수 없다보니 이병철, 정주영 회장을 잊지 못하듯 패스포트를 바꾸지 아니한 애국자 박동선 회장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茶人葬’으로 하였다면 하늘나라 가시는데 조금은 더 편하셨을 것이고 나 역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을 것인데, 조카분들의 가족장 주장과 茶도 한잔 못 올리게 하는 장례 절차를 따라야만 했던 나약함의 울화통이 언제 가라앉게 될지 모르겠다.
박동선 이사장님은 지병으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면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2024년 9월 19일 별세하셨다.
장례식장: 순천향대학교 장례식장 2층 특5호실
박동선 이사장님은 차의 선구자로서 1979년 1월 20일 한국 차인회가 출범했을 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발기인: 박종한, 김미희, 박태영
고문 추대: 최범술(효당스님), 안광석, 이방자, 박동선
한국차인회가 결성되고 첫 사업으로 진행한 것이 초의선사가 거쳐 했던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복원 사업이었다. 일지암 복원 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1980년 4월 15일 복원되었다.
아인 박종한 선생님은 생전에 이 당시 박동선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이제 차의 선구자들은 모두 별세하셨다.
- 19일 박동선 이사장님의 언론 보도는 다음과 같다 -
박동선 씨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한·미 외교 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코리아 게이트’ 사건의 핵심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24년 9월 19일,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코리아 게이트 사건은 1976년 10월 2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동선 씨는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미국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에게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전달하는 로비 활동을 벌였다고 하며, 이 사건은 당시 한·미 외교 관계에 큰 마찰을 일으켰다.
중국 원청화 전문가 장칭위(张庆玉) 선생 초청 강연과 도자기 감정을 이틀간 기록한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강연 및 감정 시간:
중국 원청화 전문가 장칭위(장경옥 张庆玉) 선생과 명대, 청대 도자기 전문가 장치화(张其华) 선생을 초청하여 강연과 감정 시간을 가졌다.상인들이 가져온 도자기들은 모두 가짜로 판명되었지만, 가정 주부가 가져온 접시와 수저는 청대 초기와 중기의 진품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개인 소장품인 찻잔 종류는 명대와 청대 수출용 자기로 판명되었다.
유익한 강의:
원나라 때의 청화에 대한 강의는 매우 유익했다. 도자기의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특성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문자 기록의 가치를 도편에서 하나하나 찾아낸 장칭의 선생의 저술 “원청화”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 과정의 배움:
도자기 감정 시간 동안, 감정인은 문양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적 진실과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며 진품과 가품을 구별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인의 박식함과 겸손함을 배울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도자기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