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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중국과 한국에서 30대-40대 사이에 홍차가 붐인 것 같다. 필자는 중국홍차를 즐기고 중국홍차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유럽홍차에는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유럽홍차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홍콩의 홍차문화를 직접 현장 경험해 보면서 유럽홍차의 문화 현상을 이해하게 된다.
‘애프터눈티’를 취재하면서 점심과 저녁 사이인 오후 3-6시 무렵 스콘(scone), 케이크 등의 티 푸드와 함께 홍차를 마시며 사교의 시간를 가지는 문화는 한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문화였다.
특히 한국에서도 유명한 페닌슐라 호텔의 ‘애프터눈티와 티파니 식기들로 한적한 분위기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싶다면 리펄스베이에 위치한 더 베란다를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곳의 애프터눈 티는 다음에 소개 하고자 한다.

오늘은 ‘더 베란다’에서 만난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사진과 함께 담고 있는데 홍콩이나 유럽 홍차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가 될 것 같다.

 리펄스베이

제임스 타카르트가 처음 홍콩의 미개척 남방 지역에 새 리조트를 건설한다고 할 때, 그 사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동양의 리베라’가 되기 위한 이 입찰에서 그의 성공적인 회사가 당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식민지에 미칠 영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펄스베이 호텔의 이름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고급스러운 음식과 빼어난 경관, 정교하게 다듬어진 정원과 곳곳에 깃들인 세심한 손길들이 아시아 호텔 문화의 새로운 기준을 정립했다.

3년 이상의 제작 기간을 걸친 이 책은 미공개 사진과 희귀 수집품 그리고 직접 전해 들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통해 리펄스베이의 매력적이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호텔방에서 축포를 터트리며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했던 일화부터 세계 제2차대전의 비밀 평화 협상 그리고 유명 고객들의 다양한 칵테일 사랑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에 걸친 홍콩의 유익하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묘사될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장개석, 윌리스 심슨, 마고 퐁텐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장애링, 에밀리 한, 한수인, 오손 웰즈 그리고 이안 플레밍과 같은 다양하고 까다로웠던 고객들이 조용한 오후의 티 타임을 갖거나 오케스트라 즉흥 음악에 맞추어 로맨틱한 저녁 댄스를 추고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전해지며 오늘날의 고객에게도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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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급(號級) 골동 차사전(茶事典) /보이차 근원탐색과 유변(流變)

보이차에 관한 전문 책은 다양하게 발행되고 있다. 그 중 대만에서 골동 보이차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기에 오늘날 보이차 광풍에 어울리는 책이 발행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보이 생차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는 가운데 인급 호급 보이차의 폭등은 무엇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임을 대변해 준다.

평소 보이차를 마실 때, 맛으로 마시거나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마신다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책이겠지만 보이차로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거나 혹은 보이차를 투자의 대상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호급보이차를 모르고는 논할 수 없다. 오늘날 보이차 홍인이나, 동흥호, 강성, 송빙, 경창, 복원창 등과 같은 차를 논할 때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본인이 마셔보지 않았거나 모르면 모두 가짜라고 치부해 버린 그 차들이 현재 차를 현금으로 바꾸는데 가장 빠른 차가 되어 있다.
[책 표지, 호급 골동 차사전]

홍콩 보이차 시장과 대만 시장은 우리나라와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해놓은 질서가 모두 정직한 모범 답은 아니겠지만 보이차에 관한 그들의 손에 의해 질서가 잡히는 부분에서 상당부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은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호급 골동보이차에 대한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다. 석우연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의 글 일부와 저자의 서문을 번역하여 올린다.

편집자 서

오행도서공사가 일직이 2003년에 곧바로 착수해서 편집을 추진한 ≪호급차사전(號級茶事典)≫이 거의 십 년간에 걸친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자료수집 끝에 ≪호급보이차사전≫이 마침내 2012년 연중에 출판될 예정이다. 본서의 저작자인 양개(楊凱)는 2005년에 ≪다예·보이호예(普洱壺藝)≫의 칼럼리스트를 담당하였는데, 본인과 그는 똑같이 이공계 출신이라서 그의 이공치학(理工治學)적 엄근(嚴謹)한 합리적인 추론을 이용한 아울러 거의 실전하다시피 한 운남보이차 역사에로의 환원(還原)적 관점에 대해 상당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의 앞서 지은 ≪대청(大淸)에서부터 중차(中茶)까지≫를 발표하는 동시에 본인은 바로 그와 함께 공동으로 ≪호급보이차대사전≫을 집필할 것을 요청하였으니, 그의 실사구시하는 치학태도를 빌어 보이차 역사를 명백하게 본서에서 드러내고자 기도하였다. 게다가 장차 이 책이 전 보이차시장을 지탱할 고단(高端)적인 지주가 되길 미리 예측해본다. 이 시점에서 바라건대 본서가 당신의 가장 유력한 전문적인 공구서사 되길 바라마지 않는바, 이는 곧 본서 편집부에서 이 책을 출판한 최대의 기대치인 것이다.

호급 골동 차사전 본문

* ≪호급 골동 차사전—보이차 근원탐색과 유변≫ 안건이 마침내 최종적으로 결정나다!

2010년 초, 오행도서공사의 량준지(梁俊智) 선생이 본인과 함께 보이차 공구서를 새로 한 권 쏘내자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흥분해서 즉시 불철주야하다시피해서 문헌자료를 찾고, 지인들을 탐방하며 구도를 구상하고, 문자들을 어찌 구성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본인 자신이 중국의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차문화연구는 단지 그저 아마추어적인 개인적 애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모든 건 각고 면학하여 일분일초 짬을 내어가며 겨우 완성해낸 것이다.

당시 량준지 선생과 본인과의 약정은 2010년 11월에 이 책을 출판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각가인 락봉봉(駱芃芃) 여사가 본서를 위해 제자를 써주셨기 때문에 ‘경인봉봉(庚寅芃芃)’이란 글자가 있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다시 홍콩과 이무(易武), 석병(石屛), 하관(下關) 등지에 가서 대량으로 일차적인 자료들을 찾아내고 인물들을 찾아 담론하면서, 단속적으로 이미 완성한 원고의 일부 글자와 도편의 수정하였으나, 본서의 구조가 이미 설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내용은 이 책속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구조 틀 안에서 역사와 문화부분은 본인이 맡아 썼고, 노차도록은 오행도서가 도맡아했다. 그러나 도록 중에 대한 글에 대해선 본인은 그래도 객관적으로 설명을 했다.

≪대청에서부터 중차까지-가장 진실한 보이차≫의 창작경험을 흡수하여, 본서 가운데에 문헌인용문에 대해서는 정간(精簡)하고 적당한 해설을 붙였으며, 아울러 대량의 원시 파일도편은 책속에 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용문의 가신도(可信度)를 증가했을 뿐더러 또한 그 인용문에 대해 의문이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히 원시파일도편을 참조해서 스스로 해독하고 발굴할 수 있게끔 했다. 물론, 독도(讀圖)시대에 독자의 시각적 인상과 역사체험을 풍부하게끔 하는 것 역시나 필자의 조그만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반드시 승인할 건, 본서는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학술적인 전문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 본서의 대다수 내용은 엄격한 비평을 견뎌낼 거라 믿는다. 이 또한 필자가 역사학자인 림초민(林超民) 선생께 서문을 부탁드린 진심이기도 하다.

2010년 3월, 한국학자인 짱유화 교수가 본서의 한 교정본을 보고서는 매우 놀라 뛸 듯이 기뻐하며 귀국 전에 밤을 새워가며 통독하면서 번체자의 교정을 도왔으니, 믿어 의심치 않는바, 이는 절대로 짱 교수의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인가내진 애호인 바이다.

본서의 출판 이전에 특히 세계 차문화 교류협회 명예회장인 하작여(何作如) 선생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필히 인정할 것은, 본인의 노차지식 대부분은 등시해(鄧時海) 선생, 하작여 선생, 소영신(蘇榮新) 선생 세 분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로서, 이들 세 분의 호자급 노차는 나한테 뭇 평론가들과 감정인들과는 다른 독립적인 보이차 가치관을 우러나게 해주었다.

하 선생은 일직이 나를 대신해서 대만에 가서 차수(茶壽, 108세를 이름) 노인 리불일(李拂一) 선생을 위문하였으며, 나와 함께 홍콩과 이무의 노차인(老茶人)과 노차장(老茶莊)을 방문하기도 했고, 나한테 아주 선심 써서 모든 노차들을 개방해주었다. 그는 또한 전화로 항상 장시간동안 함께 학술을 토론하기도 하였는데, 더욱이 그가 보이차는 오래 묵을수록 더욱 진한 향내가 나다는 매커니즘을 밝히고자 60여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식물생리학과 매제제공정(酶製劑工程), 미생물발효기술 등 고삽(枯澁)하고도 전문적인 고도의 깊은 학문을 학습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욱 그에 대해 충심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다.

본서의 창작은 또한 허다한 각기 다른 시기에 친히 보아차 생산과 연구 및 판매에 참여했던 이들과 국내외 오랜 경력의 마니아들의 두터운 사랑에 힘입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자신 한 완전한 보이차관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게다. 그야 물론 운남에서 재스민의 대량 식목과 이용을 개척한 나의 후배 로명(魯明) 선생과 일직이 나한테 대량의 자료를 제공해준 역사학 석사 류연(劉燕) 양, 그리고 나의 가족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정어린 정중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교를 말하건대, 1982년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대학 입학증을 동시에 받았다. 기이하게도 나는 장춘광기(長春光機, 광학정밀기계)학원(學院)이란 전문범위가 극히 작은 반공반리(半工半理)의 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4년 후에 나는 다시 업종을 바꿔 출판업계에 뛰어들어 아동도서 편집을 도맡았다. 고개 돌려 사방을 바라봄에 나의 아주 많은(전부는 아닌)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전공과 무관한 영역에 몸을 담았다. 예컨대: 경찰, 회계사, 고고학자, 한의사, 음악교수, 대형트럭 운전사, 밀수범, 관료, 기업가, 변호사 등등, 학생인구수의 비례로 말하자면, 이 학교는 졸업 후의 취업경향이 제일 기특하고 궤도가 아주 다양한 학교일게 틀림없을 거 같다.

나는 우리들의 야만적인 생장을 윤허해준 청춘의 지난 나날들을 그리워하는 바이다.

본서의 결함에 대해서는, 그건 바로 차관(茶館)의 문화사에 대해서 그리고 탐방 중에 접촉했던 이들의 펄펄 살아 숨 쉬는 운명에 대한 관심부족인바, 이것들은 아무래도 나중에 다른 책에서 묘사해낼 작정이다.

2012년 4월 1일 새벽녘에 곤명(昆明)에서 양개(楊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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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생산한 노반장과 노만아]

우리나라는 최근 노반장(老班章)이라는 차에 대해서 맹목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 보이생차는 노반장을 기준으로 해서 가격을 조절하고 노반장을 보유하고 있거나 마시고 있어야 보이차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한다.

노반장을 선호하는 추세에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비교하자면 무이암차 시장에서 대홍포가 수선이나 육계 품종이 얼마나 많이 섞였는가 따라 질과 맛이 다른데도 일반인은 모두 대홍포라고 생각하고 비싼 가격에 마시고 있는 것처럼, 노반장도 그 인근에 있는 노만아(老曼峨) 의 찻잎을 섞어도 외관상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혼돈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는 노만아가 노반장보다 아(芽)의 색상에서 황금빛이 더 돌고 전체적으로 찻잎이 더 좋아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노반장과 노만아의 순료를 자주 접해보면서 일정 비율 병배된 노반장을 마시고 있고, 괄풍채 순료와 그리고 라오스에서 채엽한 차들을 비교해서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노반장은 자신들이 취급하고 있거나 믿을만한 큰 회사에서 생산한 것만으로 우기기에는 어려운 사정이 있다. 또한 '보이차의 부작용'은 여러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정직하지 못한 차의 유통도 잘 못 만든 차로 인해 보이차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어 보이차 자체를 불신하는 현상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반장을 생엽 거래가격 이하로 차가 거래된다고 하면 값이 싼 것이라기 보다는 한 번쯤 생각할 여지가 많은 차다. 노반장 찻잎의 가격이 있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2007년 이전에 만들어진 노반장과 2009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에서도 맛과 향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07년 이전에는 찻잎을 많이 채엽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찻잎을 채엽할 수 있었지만 노반장이 인기를 끌고 진승차창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하면서는 보이차 노반장은 채엽의 기준이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구별은 전문가의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전문가인가를 찾는 것도 차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능력이다.

이젠 00차장에서 만든 것이 최고다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 00차창에서 몇 년도에 만든 것이 라고 할 수는 있어야 차에 대한 맛과 향을 조금 구분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감별은 라오스 등의 변경차가 괄풍채 차와 혼합되어 생산되어도 일반적인 애호가는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상인의 말을 가려서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점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애호가는 모든 고수차에 관심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관심 분야를 넓히는 만큼 고수차에 대해서 알아가는 지식은 더욱 미약해 질 뿐이다.

쓴 맛만 강하게 나오거나 회감에 있어서 쓴맛에서 단맛으로 돌아오는 미세한 차이, 경험이라는 것이 무시 못할 일이며, 가격이 폭등하는 노반장에 대한 평가가 좋기는 하지만 그 산업과 그 마을에서의 채엽상황이 어찌 될 것인가에 따라 또 노반장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보이차는 노반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평가받지 못한 어떤 차들이 또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특정 보이차를 쫓아가는 막차의 차인이 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즐기고 또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와인을 발견하는 것처럼 좋은 보이차를 찾아 자신의 차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차인이요, 더 나아가 차꾼인 것이다.

필자는 보이차 도감을 제작하는 과정에 보이생차에 대해서 엄선한 차를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서 조금씩 익혀나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아름다운차도구> 3권, 4권을 통해서 발표를 해왔으며, <아름다운 차도구> 5권에서도 보이생차 특집으로 보이고사(대표 박정호)에서 제작한 2012년 노반장과 노만아, 서경호(대표 허동창)에서 제작한 2009년 '노반장'과 2005년 생산한 경매 전차, 2012년 진미호에서 생산한 노만아 등으로 비교 사진이 공개된다.

 

한국인은 차를 어떻게 마시는가? http://www.seoku.com/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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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국홍차(운남전홍)]

우리나라에서 차를 전문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에게 유럽홍차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러 번 밝힌바 있다.(유럽홍차가 나쁘다는 의미는 절대아님) 특히 중국 운남성에서 생산된 전홍이나 복건성의 정산소종, 강소성의 의흥홍차, 안휘성 기문홍차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유럽홍차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리고 화려하고 품위있는 다기를 사용하면서 홍차를 문화적으로 성숙시킨 유럽 홍차가 대단한 것으로만 이야기한다면 동양의 차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해진다.

유럽홍차를 마시는 방법으로 하루 1-2잔 정도를 맛있게 마신다면 문제가 없지만 중국이나 한국 사람들이 음용하는 방식은 여러번 많이 마시는 습관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운남성에서는 대수홍차의 생산량이 늘어가고 있다. 보이차 만으로 시장을 확장시키기에는 조금 한계가 온 것으로 보인다. 농민은 농가 소득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무 수령이 100년에서 300년 사이의 대수차를 원료로 만든 것을 크게 자랑하며 홍차 생산을 확대하며 새로운 소득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보이생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발효가 잘 된 전홍을 마시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대엽종으로 만드는 홍차를 보이차 마시는 방식으로 많은 양을 마신다면 미국 조지아오거스타에 소재한 조지아 의과대학 치의학부의 개리 휘트포드 교수 연구팀(구강생물학)2010년 국제 치의학연구협회(IADR)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의 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중국 보이차를 마시는 티벳 승려들을 대상으로 불소의 부작용이 거론되었지만 이번에는 홍차에 들어 있는 불소(弗素) 함유량이 당초 알려진 수준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나 10년 이상 과량음용할 경우 자칫 건강에 해를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차에는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불소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남방의 주요산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소비가 많은 음료인 홍차에는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보다 더 높은 농축된 불소 성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차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조지아 의과대학 연구자들이 말한다.

하루에 2잔에서 4잔의 차에서 얻는 불소는 누구에게도 전혀 해가되지 않지만 차를 많이 마시는 사람의 경우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치과학에서 구강 생물학 교수인그레이 위트포드 박사는 말한다. 그는 그의 발결을 2010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국제 치과연구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다.

대부분의 출판된 보고에서 홍차 1리터당 1-5밀리그램의 불소가 있다고 하지만 새로운 연구에는 9밀리그램 이상일 정도로 많은 양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불소는 충치를 예방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도한 양을 오랫동안 섭취하면 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평균적으로 불소가 포함된 물 섭취와 치약, 음식 등으로 하루에 2-3밀리그램의 매우 안전한 양을 섭취한다. 하루에 약 20밀리그램 이상을 섭취하게 될 경우에 그걸 10년 이상 한다면 뼈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을 일으킨다.

위트포드는 불소가 홍차에 집중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고 뼈의 블소침착이나 관절과 뼈 문제가 있는 환자 네 명을 관찰한 결과 이런 환자는 미국에서 매우 드문데 그들의 차 소비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각각의 사람이 1에서 2갤론을 매일 10년에서 30년 이상 섭취했던 것이다.

"환자의 차 브랜드를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테스트했을 때 불소 함유량이 매우 낮음을 밝견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방법이 모든 불소를 제거하는 게 아닌지 추측했다. 차는 독특하게 매우 많은 불소 성분과 알리미늄이 그 잎에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미네랄 함유량이 차 1킬로그램 당 600에서 1000밀리그램에 이르른다. 잎이 차로 만들어졌을 때 미네랄 일부는 음료로 이전된다.

이전의 홍차 연구들이 전통적으로 알리미늄과 결합된 불소를 측정하지 않았다. 알리미늄화된 불소는 녹지 않는 형태를 띠고 있으며 불소 이온으로 제거되지도 않는다. 위트포드는 다른 방법으로 이 방법을 비교했다. 알리미늄과 결합된 불소를 쪼개자 차 샘플 안의 모든 불소가 추출되어서 정확하게 양을 측정할 수 있었다.

요약 : 홍차에 불소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기존 연구에서는 알리미늄과 결합된 양을 측정하지 않았으나 그것까지 측정해 보자 생각보다 많은 불소를 홍차 한잔으로 섭취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홍차는 뼈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많이 마셔서는 안 된다. 하루에 2잔에서 4잔까지만 마시는 것이 좋다.

특히 홍차가 위험한 이유는 불소가 오래되고 성숙한 잎에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차로 만드는 보이차나 홍차류가 위험하다고 보여진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 박홍관 - 교보문고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 박홍관 - 교보문고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는 형설출판사에서 발행된, 일명 ‘중국차도감’으로 더 많이 알려진 책이다. 대부분 차 산지를 방문하여 그 지역의 정확한 품종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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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원대학교 중국 운남성차업협회 공동주최로 보이차 세미나 개최가 있다는 안내지를 보았다. 국내 차산업이 불황임에도 차 세미나 특히 보이차에 대한 학술 세미나는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다만, 차를 구매해서 마시지 않고 보이차 공부만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는 입장료 10만원의 가치와 저울질해야 할 것 같다.

한국과 중국에서만 보이차(푸얼차)에 열광하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엔 광적인 열광은 예전 같아 보이지 않다. 그동안 맹목적인 투자를 권유했던 상인들이 3, 5년뒤의 미래가치를 너무 부풀여 왔기에 이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 상황이다.

보이차를 거론 하면서 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 것 같지만 이렇게 붐을 조성시킨 상황들을 보면 마음속에 투자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흔히 하는 말로 보이차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자식들에게 줄려고 구입했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돈의 환금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투기와 투자는 다르기 때문이다.
보이차 세미나는 투자와 같다. 보이차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경험이기 때문이다.
보이차에 대해 즐기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과 그 화두를 보면 마셔 보았는가?”이다. 더 나아가 그것을 어떻게 마셨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추가 부연되기 마련이다.

보이차는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시간에 돈을 벌 수 있는 목적을 가진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는 팔고 산 쌍방이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보이차는 1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2-3세대 후에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기에 중국의 차인들도 보이를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은 경험이다. 보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잠시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년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보이차를 늘 대해 왔던 필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이번 세미나 초청 강사와 발표내용을 보면,
# 중국 운남성차업협회 추가구 회장은 차마고도는 왜 유라시아대륙을 넘지 못했는가?
# 짱유화보이차연구소 짱유화 원장은 보이차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3가지 이유
# 경기도 광덕사 경원 스님은 보이차 맛의 문학적 표현.

위 세 분의 발표 제목을 보면, 보이차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다.
주식투자 특강과는 다를 것이다. 이 강의를 듣고 투자할 만한 보이차를 알고자 한다면 권고할 내용은 아니다. 보이차의 차성이 좋아서, 보이차를 즐기는 방법, 보이차의 역사적 진실 가운데 이미 밝혀진 자료보다는 좀 더 통사적인 면을 알고 기대할 수 있는 강사라고 생각한다면, 입장료 10만원에 투자해 보는 것이다. 강사의 목소리는 다름아닌 경험이다. 10만원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보이차에 대한 생생한 진실이다.

행사: 제2회 한중보이차세미나
후원: 주한 중국대사관 문화처&주한 중국문화원
일시: 2112년 2월 25일
장소: 주한중국문화원
행사문의: 대원대학교 국제교류원
043) 649-3566-8
행사장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 200번지,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7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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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성에서 무이암차가 생산되는 무이산, 무이산 공항]

무이산은 예로부터 “차나무왕국”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성군체 차나무가 야생하고 있으며 현지 사람들로부터 채차(菜茶, 또는 기종(奇種))로 불리고 있다. 채차는 긴 역사를 거치면서 외부 품종과 자연교잡을 진행하고 또 무이산의 독특한 자연환경 영향을 받아 다종다양한 성상과 특징을 구비한 무이산 현지의 독특한 차나무품종을 형성했다.

복건성에서의 차 연구가들은 자연 교잡된 품종가운데서 우량품종을 선정, 육성시켜 현재의 많은 명차 품종들을 재배해냈다. 무이산에서 유명한 대홍포, 철나한, 백계관, 반천요, 수금귀, 백서향, 백목단, 불지춘, 불견천 등의 품종은 채차로부터 변이, 재배된 것이다. 후에 재배, 육성한 명품차나무는 수백종이나 되며 통상적으로 팔백여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혜원암(慧苑岩)에만 해도 다음과 같은 264종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철라한(鐵羅漢), 백월계(白月桂), 정태륜(正太侖), 수호로(水葫蘆), 야래향(夜來香), 금사자(金獅子), 홍월계(紅月桂), 과자인(瓜子仁), 취귀비(醉貴妃), 새문단(賽文旦), 소심난(素心蘭), 취서시(醉西施), 정설리(正雪梨), 순산후(巡山猴), 녹제매(綠薺梅), 정벽매(正碧梅), 과산룡(過山龍), 취해당(醉海棠), 취모후(醉毛喉), 금정향(金丁香), 선인장(仙人掌), 도홍매(桃紅梅), 정벽도(正碧桃), 과자금(瓜子金), 취동빈(醉洞賓), 백설이(白雪梨), 병제란(幷薺蘭), 정작약(正芍藥), 정서향(正瑞香), 녹부용(綠芙蓉), 백두견(白杜鵑), 부독점(付獨占), 벽도인(碧桃仁), 정옥란(正玉蘭), 백사향(白麝香), 백조란(白弔蘭), 녹앵가(綠鶯歌), 금관음(金觀音), 정장미(正薔薇), 월월계(月月桂), 홍해아(紅孩兒), 백기란(白奇蘭), 분홍매(粉紅梅), 금류조(金柳條), 녹모단(綠牡丹), 정황용(正黃龍), 녹독점(綠獨占),, 나한송(羅漢松), 백서향(白瑞香), 정육계(正肉桂), 석유향(石乳香), 정모후(正毛喉), 정산호(正珊瑚), 수금전(水金錢), 연자심(蓮子心), 고과(苦瓜), 석중옥(石中玉), 불지춘(不知春), 만년홍(萬年紅),

 

 

[무이암차 맛의 매력은 '암골화향'에 있다. 그 맛을 잘 내기위해서는 홍배의 기술이 절대적이다. 사진에 보이는 홍배실은 무이산 왕순명 회장이 운영하는 공장의 홍배실이다.]

정목과(正木瓜), 만년청(萬年靑), 석관음(石觀音), 수금귀(水金龜), 정매점(正梅占), 사방죽(四方竹), 만수향(滿樹香), 기난향(奇蘭香), 호이초(虎耳草), 일주향(一柱香), 용수초(龍須草), 금전초(金錢草), 관음죽(觀音竹), 월상향(月上香), 팔보향(八步香), 사계향(四季香), 영웅초(英雄草), 천리향(千里香), 만산향(滿山香), 영지초(靈芝草), 엽하홍(葉下紅), 만지홍(滿地紅), 만홍홍(滿紅紅), 태양국(太陽菊), 연명국(淵明菊), 정신초(精神草),

일일홍(日日紅), 반반약(半畔藥), 노내홍(老來紅), 장원홍(狀元紅), 침향초(沈香草), 동리국(東籬菊), 봉미초(鳳尾草), 해조국(蟹爪菊), 수사연(水沙蓮), 오시연(午詩蓮), 불수연(佛水蓮), 천층연(千層蓮), 팔각연(八角蓮), 병중매(甁中梅), 영상매(嶺山梅), 출장매(出墻梅), 경양난(慶陽蘭), 응조난(鷹爪蘭), 석조난(石弔蘭), 사계난(四季蘭), 금호접(金蝴蝶), 금옥섬(金玉蟾), 금석곡(金石斛), 금영자(金英子), 금불환(金不換), 옥사자(玉獅子), 기린(麒麟),옥연환(玉連環), 홍매당(紅梅棠), 홍계관(紅鷄冠), 홍수구(紅琇球), 계조황(鷄爪黃), 옥해아(玉孩兒),

녹부용(綠芙蓉), 대계림(大桂林), 수중포(水中蒲), 녹창포(綠菖蒲), 수중선(水中仙), 노군미(老君眉), 노내교(老來嬌), 노옹수(老翁須), 점점금(点点金), 향일규(向日葵), 전춘라(剪春羅), 전추라(剪秋羅), 국공편(國公鞭), 섬궁계(蟾宮桂), 공작미(孔雀尾), 만년송(萬年松), 관공미(關公眉), 마미소(馬尾素), 칠보탑(七寶塔), 진주구(珍珠球), 엽하청(葉下靑), 인삼과(人參果), 석연자(石蓮子), 조금귀(弔金龜), 쌍봉관(雙鳳冠), 위영선(威靈仙), 과강용(過江龍), 불수감(佛手柑), 쌍여의(雙如意), 제금채(提金釵), 소옥계(小玉桂), 일지향(一枝香), 일엽금(一葉金), 취화교(翠花嬌), 남전옥(藍田玉), 낙양금(洛陽錦), 절절옥(節節玉), 왕모도(王母桃), 화조석(花藻石),

자금관(紫金冠), 석종유(石鐘乳), 은사필(隱士筆), 동심결(同心結), 죽엽청(竹葉靑), 동빈검(洞賓劍), 천명동(天明冬), 불로단(不老丹), 마제금(馬蹄金), 오경괴(五經魁), 파초녹(芭蕉綠), 서원류(西園柳), 우미인(虞美人), 협죽도(夾竹桃), 향명삽(香茗澁), 천남성(天南星), 소도인(小桃仁), 운남벽(云南碧), 서유조(絮柳條), 오동자(梧桐子), 송옥수(宋玉樹), 보보교(步步嬌), 소목단(笑牡丹), 연화전(蓮花箋), 야명주(夜明珠), 수화침(銹花針), 관음장(觀音掌), 자금정(紫金錠), 석감람(石橄欖), 자목봉(紫木峰), 영춘류(迎春柳), 야장미(野薔薇), 산상봉(山上棒), 십팔초(十八草), 묵두필(墨斗筆), 취화합(醉和合), 환혼초(還魂草), 연지미(烟脂米), 취수선(醉水仙), 백창난(白蒼蘭), 백두규(白豆竅), 백두견(白杜鵑), 백옥매(白玉梅),, 금자연(金紫燕), 새용치(賽龍齒), 새영양(賽羚羊), 새주기(賽珠琪), 새옥침(賽玉枕), 새낙양(賽洛陽), 출림소(出林素), 옥여의(玉如意), 옥미인(玉美人),

정수지(正水枝), 정옥잔(正玉盞), 정반죽(正斑竹), 정마노(正瑪瑙), 정삼수(正參須), 정여지(正勵枝), 정송라(正松蘿), 정백호(正白毫), 정자금(正紫錦), 정장춘(正長春), 정속향(正束香), 정유리(正瑠璃), 추유조(墜柳條), 정부평(正浮萍), 정은광(正銀光), 정당수(正唐樹), 정형극(正荊棘), 정나의(正羅衣), 정기남(正棋楠), 홍두규(紅豆竅), 옥토이(玉兎耳), 암중난(岩中蘭), 칠보단(七寶丹), 왕채관(王彩冠), 백옥상(白玉霜), 향동규(向東葵),

해용각(海龍角), 도엽류(倒葉柳), 번부용(蕃莩蓉), 초복난(初伏蘭), 향천매(向天梅), 옥상춘(玉常春),호조홍(虎爪紅), 월월홍(月月紅), 정청태(正靑苔), 정백과(正白果), 정봉미(正鳳尾), 정훤초(正萱草), 정상심(正桑甚), 정죽난(正竹蘭), 정옥국(正玉菊), 대부판(大夫板), 만년목(萬年木), 군자죽(君子竹), 자형수(紫荊樹), 천년왜(千年矮), 구품연(九品蓮), 금쇄시(金鎖匙), 수양매(水楊梅), 수저월(水底月), 월중선(月中仙), 사계죽(四季竹), 망우초(忘虞草), 정당매(正唐梅), 옥녀장(玉女掌)

혜원암 및 기타 명암(名岩)에 있는 차품종들은 주로 여덟가지를 근거로 차 이름을 지었다.
차나무 생장환경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불견천, 석각, 영산매, 과산용, 수중선, 금쇄시, 반천요, 조금종 등이 있으며, 차나무 형태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취해당, 취동빈, 조금귀, 봉미초, 옥기린, 국공편, 일지향 등이 있다.

찻잎 형태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과자금, 금전, 죽사, 금류조, 도엽류 등이 있다. 찻잎 색깔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태양, 태음, 백조난, 수홍매, 녹제매, 황금정 등이 있다. 차나무 싹이 발아하는 시기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영춘류, 불지춘 등이 있다. 완제품차의 향기종류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육계, 백서향, 석유향, 백사향, 야래향, 십리향 등이 있다.

전설중의 재배시기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정당수, 정당매, 송옥수 등이 있다. 신화 및 전설내용에 따라 명명한 것으로는 대홍포, 백계관, 수금귀, 여동빈, 백목단, 홍해아 등이 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판) http://www.seoku.com/442

차도구의 이해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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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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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다예연구소(원장 이영자)에 설치된 "보이생차"로 만든 차벽의 일부, 2010년 5월 설치]

보이차에 대한 자료를 알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많은 책들을 새롭게 보게되었다. 이전에도 보았지만 그 당시엔 그때의 관심사만 보았을 뿐이다. 이젠 차학이란 분야에서 접근해 보면 “차의 선진국(필자 주)”에서 만들어진 중국차에 대한 관심은 보이차에 집중되는 현상을 실감하게 된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는 차지하고 차에 대한 비전문가 들이 알고 싶어하는 차(茶)가 ‘보이차’라고 하면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이다.

 

특히 홍인이 언제부터 제조되었는가 대한 논리는 ‘호차급(號茶級)’ 차(茶) 생산 이후에 만들어진 ‘인급차(印級茶)’ 포장 인쇄술에까지 그 시대 상황이 반영된 내용으로 볼 때 박창식 선생(필명 죽천향)의 블로그(죽천향실)에 올려진 2009년 8월 28일 ‘인자급 홍인의 진실’에 대한 글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동안 여러 논저에서 나온 인급차(홍인, 녹인 등)의 생산 기간을 (1938-1970)에서 [인급차(印級茶) : 1951-1970]으로 하게 되었다.

박창식 선생의 논저를 믿는 것은 첫째 ‘호차급과 인급차’를 수년 전만 해도 실제 생활에서 완편을 쪼개어 마셔온 차꾼으로서 ‘등시해 교수 책과 짱유화 교수의 논저’ 및 중국내 신문을 인용하여 그 근거가 매우 논리적인 점이다.  http://blog.daum.net/36254598/13385065

『푸얼차(普洱茶)』의 저자인 ㄷ교수의 설명.
“찻잎 원료의 산지를 구별하기 위해 맹랍(勐臘)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붉은 색으로 표기하여 ‘홍인(紅印)’이라 했고, 맹해(勐海)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의 차자(茶字)는 푸른색으로 인쇄하여 이를 ‘녹인(綠印)’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붉은 차자(茶字)의 푸얼원차(普洱圓茶)는 맹랍의 제일 좋은 찻잎으로 만들어졌고 이무진(易武鎭)은 맹랍현(勐臘縣)에 속해있기에 붉은 색으로 찍힌 차자(茶字)의 찻잎은 가장 좋은 찻잎으로 인정받은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대엽종 차나무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곁들여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홍인푸얼원차(紅印普洱圓茶)는 40년대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50년대 공산당정권(共産黨政權)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진다. 40년대의 조기홍인은 이무차산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어졌기에 품질이 우수한 반면 후기홍인 제품은 50년대 공산정권 아래서 제조한 것으로 품질면에서 조기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홍인에 대한 판별법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짱유화 교수의 인급차(홍인)에 대한 이야기
홍인에 대한 의혹 풀이는 먼저 제작연대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1950년대, 내란을 겪은 후의 중국은 전쟁의 피폐함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우리가 언급하고자 하는 맹해 지역은 중국의 변방이기에 그 참상은 더욱 심했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의 맹해의 물품거래는 현금이 아닌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이곳에서의 화폐는 가치가 없으며 돈이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당시 불해차창(佛海茶廠) 오늘날 맹해차창 복원에 참여했던 탕렌량(湯仁良) 선생의 인터뷰

“1949년 중국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이곳에서 철수한 후 맹해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맹해차창의 경우 생산설비들이 모두 도난 또는 파괴가 되어 차 생산은 물론 기초 작업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었다. 당시 우리는 맹해차창의 복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직 차창(茶廠) 작업장의 복원에만 매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맹해의 현황에 대해 “당시 맹해의 인구 구성원을 보면 소수민족이99%이며 이곳의 한족은 모두 외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뿐이다. 소수민족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물건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생활하는데, 당시는 무척 빈곤했던 터라 모두들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교환할 처지이지 차를 만들어 내다 파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설사 있었더라도 그 양은 아주 미미했을 것이다.” 필자는 여러 번 맹해현 정부자료실을 들췄으나 당시 이곳의 차에 관한 그 어느 자료도 찾지 못했다.

:현 운남성 서쌍판납 맹해현 차엽판공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1951년까지 맹해는 무척 혼란하기에 차를 만들고 상품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운남성의차의제조 및 판매에 관한 유통은 모두국영형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지시는 모두주관 부서인‘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中國茶葉公司雲南省公司)’로부터 받았다. 설령 생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들이 만든 가정용 형태의 차일 뿐 상업제품은 아니다.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맹해에는 푸얼차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정확한 일기는 갖고 있지 않다.” 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운남성의 푸얼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중국차엽공사운남성공사’에 보관되고 있다.

필자는 현 중국운남성차엽협회(中國雲南省茶葉協會) 회장이신 쯔어우자쥐(鄒家駒)씨의 도움으로 당시의 자료를 찾을 수가 있었다 .운남성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맹해차창은 1956년부터 푸얼차를 만들었으며 당시 출하했던 이 제품은 모두 광동성으로 갔는데, 이 제품이 바로 후일 ‘홍인’이라는 푸얼차다.

그럼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혹은 어떠한 연유로 정식으로 등록된 녹색‘ 차(茶)’자의 마크가 붉은 색으로 인쇄되어 출하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0년대 맹해는 무척 낙후된 지역이기에 인쇄할 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에 당시 맹해차창에서 출하한 모든 포장지는 가장 가까운 지역인 푸얼현(보이현)에서 인쇄됐으며 이러한 작업은 6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50년대 당시 푸얼현의 인쇄는 원시형태인 목판으로 이뤄졌다. 목판인쇄(木版印刷)란 목재의 엇결이나 절단면에 그림이나 글자 따위를 볼록하게 또는 오목하게 조각한 판목에 안료를 첨가한 수성잉크를 칠하고 인쇄지를 놓고 종이 뒷면을 문질러 인쇄하는 방법이다. 인쇄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잉크를 배합하는 과정에서 색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즉 사용된 색상의 배합비율의 정확성이 바로 인쇄의 품질을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푸얼차 포장지의 인쇄는 단순한 색감 즉 붉은 색과 녹색 등 2가지 색감의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포장지 전체를 붉은 색으로 인쇄했던 것은 보통 당시의 낙후된 인쇄기술로 치부하고 있으나 필자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오늘날 인자급 푸얼차를 판별하는데 에 있어 포장지의 글씨체뿐만 아니라 인쇄된 붉은 색의 농담(濃淡)에 따라 그 명칭이 다르다. 즉 붉은 색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도홍판(桃紅版)과 주홍판(朱紅版)로 나뇐다.

여기서 말하는 ‘도(桃)’란 복숭아와 같은 엷은 붉은 색, ‘주(朱)’란 주사(朱砂)와 같은 짙은 붉은 색을 말하는데, 이러한 색상의 차이는 염료의 배합비율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2가지의 색상 즉 녹색과 붉은 색을 한 가지의 색으로 통일되어 인쇄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업자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잘못된 포장지의 인쇄는 3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얼마가지 않아 운남성공사의 직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되었으며, 이 일로 인해 운남성공사는 맹해차창을 심하게 비판하였다. 질책을 받은 맹해차창은 푸얼현의 인쇄소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포장지의 ‘차(茶)’자를 원안대로 녹색으로 인쇄하게 된다. 이 포장지로 출하한 제품이 바로 ‘녹인’이라는 푸얼차다.

이상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은 답이 나온다.

홍인과 녹인의 구분은 찻잎 원료의 생산지 즉, ㄷ교수가 설명하는 것처럼 ‘홍인’은 맹랍지방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푸얼차며, ‘녹인’은 맹해부근에서 구입한 찻잎으로 만든 푸얼차 라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으며, 이러한 포장지의 차이는 단순한 인쇄상의 착오일 뿐 찻잎의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리고 맹해차창에서 ‘팔중차’ 로고로 출하한 첫 번째 푸얼차의 연도는 1956년도 이다. 글. 짱유화

죽천향의 첨언:
그럼 도대체 인급차 홍인은 몇 년도부터 생산된 차인가요!
첫째, ㄷ 교수의 말대로 1942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절대로, 아니다” 입니다.
그 이유는 운남성 차엽 진출구공사<云南省茶叶进出口公司志>의 기록에 따르면 “云南中国茶叶贸易公司”는 1950년 9월 이름을 “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로 개명한 바,

1942년-1949년 만들어진 소위 조기홍인의 포장지에 1950년 에 바뀐 이름인“中国茶业公司云南省公司”라는 명칭이 절대로 인쇄되어 찍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짱유화 교수의 말대로 홍인은 맹해차창에서 1956년부터 생산된 것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급차가 맹해차창에서 1956년 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사실은 위 여러분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맞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인급차는 1952년부터 생산되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가요 ........
그것은 바로 맹해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으로 보내 하관차창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아래 중국의 인터넷 자료를 보면 현 운남성서쌍판납맹해현차엽판공실(雲南省西雙版納勐海縣茶葉辦公室) 주임인 쯔엉윈룽(曾雲榮) 선생의 증언 중에 나와 있는 “맹해차창일 경우 1953년까지는 공장의 복원에만 전념했기에 푸얼차의 생산은 없었고 1954년 이후 맹해차창의 설비가 어느 정도 구비되자 조금씩 차의 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자료: 중국 인터넷 자료중에서...
http://www.puertea8.com/html/259.html
下关茶厂的制式茶品

(상략)
饼茶篇 印级圆茶 自上世纪50年代初,下关茶厂生产了现在称为“印级圆茶”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这些产品,长期以来的普洱茶书籍中都误解为勐海茶厂生产。但前不久,在早期勐海、下关厂的相关史料中,发现了勐海厂早期只有经营原料收购、调配业务,而印级茶都是下关茶厂生产的相关证据。并且,坊间所称的印级茶年代承接也被进出口公司的纪录所修正。印级圆茶,最早生产的是绿印(蓝印)系列,后因绿色原料在卫生检疫中未能过关,而改印全红包装。

"인급원차
20세기 50년대 초,하관차창은 현재 “인급원차”로 불려지는 홍인、록인、람인 갑을급 원차를 생산하였다。이 생산품은 오랫동안 보이차 서적에는 맹해차창이 생산한 것으로 잘못되어있는데 맹해, 하관차창의 상관사료에 나타난 것을 보면 맹해차창은 초기에 경영과 원료를 거두어 사들이고 배급을 조절하는 업무를 보았다. 이는 인급차가 하관차창에서 생산되었다는 관계있는 증거이다 (하략)....。 "


그리고 1949년 12월 중국차엽공사 정식성립, 1950년 9월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성립 1951년 말 팔중차 로고의 (중차패) 등록, 이라는 기록을 감안하면 중국차업공사 운남성공사“의 지시로 맹해차창에서 구입한 원료를 하관차창으로 보내어 1952년부터 인급차를 생산하였다는 정황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해서 초기에 하관 차창에서 만든것이라 하여도 인급차의 역사는 아무리 빨라도 1951년 말 - 1952년 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입니다.


여기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의 진실과 거짓 5 - 홍인 에서 발췌한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푸얼차’서적에 따르면 홍인원차의 역사 기원은 40년대 국민당정부(1942-1949)에서 생산된 조기홍인과 50년대 공산당정권 아래서 생산된 후기홍인제품으로 나누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슨 괴력이 발휘되어 1950년에 설립된 회사의 명칭이 40년대의 제품에서 등장하게 되고 1951년에 설계한 로고가 40년대의 제품에 인쇄되어 출하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홍인에 관한 기록이자 역사이며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답이다.

상품이라는 존재는 비록 자신의 능력껏, 재주껏 파는 것이 상술이라고 하나 상술에도 격이있어야 한다. 있지도 않는 제품을 존재하는 것처럼 고가에 판매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것은 분명히 격이 결여된 상술이다.

푸얼차 상술에 관한 대가들은 모두 홍콩과 타이완에 모여 있다. 세계 푸얼차 상품의 출고가 이들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이들을 가리켜 푸얼차계의 큰손이라 한다. 이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필자는 이 모임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얼차에 관한 상업적 정의는 대부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필자는 이들과 푸얼차의 역사에 대해 적잖은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학자의 논거에 대해 귀를 기울여 지난날의 실수를 대부분 인정하는 반면 이들을 통해 푸얼차를 취급하고 있는 개인상점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부정하는 것을 보면 푸얼차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요원한가에 대해 한탄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인급차의 역사가 10년 정도 뒤쳐졌다고 해서 보이차의 왕자로 불리는 인급차 홍인의 명성과 품격이 결코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등시해 선생의《普洱茶》에 쓰여진 자료에 오류들이 있지만 운남보이차에 대한 전고가 미비했던 시절, 나름대로 수많은 보이차를 접하고, 그에 대한 자료들을 수합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냄으로 보이차에 대한 지평을 보다 넓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이차에 대해 알게 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오늘의 보이차세계가 있게 한 그분의 공로는 결코 퇴색될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홍인이라는 이름의 보이차는 그 생산 년대를 떠나서 현대보이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명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차는 그저 차일뿐이고 홍인의 맛과 향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죽천향_()_

참고 (중국신문의 기사)

http://www.yxdaily.com/yxnews/cate/xxb/2007_5_18/239399.shtml
http://www.yuxinews.com 2007-5-18 8:07:00

富豪陈茶庄里的印级茶
玉溪新闻网讯(实习记者 马瑞华 文/图)说起来应该算是缘分,才第一次去富豪陈茶庄,店家就给我介绍了三款市场上很少见的印级茶,分别是八十年代朱砂红印铁饼、八十年代大红印生茶饼和八八九二生茶饼。

据了解,印级茶指的是上世纪五十年代初至六十年代后期下关茶厂生产的红印、绿印、蓝印甲乙级圆茶,以及后来的蓝印铁饼等茶品。(인급차 지적시 상세기 오십년대 초 지 륙십년대 후기 하관다차창 생산적 홍인、록인、람인갑을급원다,이급 후래적 람인철병등 차품)。印级圆茶的外包装纸,上方自右向左横书大字“中国茶叶公司云南省公司”,下方为小字“中茶牌圆茶”,中间为八个中茶商标,内有印刷了八个中茶商标的方形小纸条,没有其他字样。
印级圆茶整体品质优异,尤其以红印、无纸红印等为佳品。这些茶的原料主要来自西双版纳勐海地区的班章、巴达、布朗等茶山的野生、野放型老茶园,所以茶质厚重、茶韵深沉。印级圆茶,是由石磨手工压制而成的。

印级圆茶有着悠久的历史,它见证了中国普洱茶国营生产及社会主义计划经济时代的开始,凭借着为“红火江山,生生不息”创造的高品质,成为市场中高级普洱茶的代称,是普洱茶中高陈期、高价位的杰出典范。在经历了四五十年的陈化后,他们现在的身价都已超过了万元,所以渐渐从流通市场上退出。印级茶是陈茶中的陈茶,精品中的精品。因其用料考究、做工精细,除了饮用之外,也是一款馈赠、珍藏佳品。

[2010년 5월에 <보이생차>로 설치된 차벽이다. 사진은 벽면 전체의 일부, 1년이 지나면서 벽에 조금씩 틈이 생기는 현상이 보인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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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공정원 진종무 원사가 발표한 보이차의 기능성 효과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보이 생차의 보이차 편입에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 것을 죽천향 님의 번역으로 정리된 내용을 보게되었다. 이 글은 처음 올렸을 때도 보았지만 오늘 그 내용을 다시 보게 되면서 《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판법》유감 표명의 글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보이차 애호가에게 유익한 글이라 생각되어 올려본다. 출처: 죽천향실 
                                                                                       blog.daum.net/36254598/13385119 죽천향실

중국공정원(Chinese Academy of Engineering) 진종무 원사
“일부 차상, 학자, 공무원은 역사의 죄인이다”

《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 판법》 유감 표명..
2009年6月1日,由国家质检总局批准的《普洱茶地理标志产品保护管理办法》正式实施。然而随后,中国工程院院士、中国农业科学院茶叶研究所研究员 陈宗懋却意外表示:“遗憾这个《办法》的内容有着致命的硬伤,它将阻碍普洱茶产业的继续发展,甚至会造成无法控制的恶果,某些茶商、学者和官员都会成为历史的罪人。”

2009년6월1일,국가 품질검사 총국 비준《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법》정식실시.
중국 공정원(Chinese Academy of Engineering) 원사인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연구소 연구원 진종무는 이 표준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불행하게도 이《판법》(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법)의 내용엔 치명적 결함이 있다,통제 할 수 없을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 내어 보이차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방해 할 것으로, 일부 차 상인, 학자, 공무원들은 역사의 죄인이다. "

陈宗懋院士所说的“硬伤”,是指由云南省政府主导制定的这个《办法》中,把传统概念中的“普洱茶”明确分为了“普洱生茶”和“普洱熟茶”两个种类,并得以官方法规形式肯定下来。而对于“普洱生茶”概念的横空出世,国家茶叶质量检测检验中心主任骆少君于2006年就在昆明的一次专题会议上明确表示:“云南省是在搬石头砸自己的脚。”

진종무 원사 가 말한 “硬伤경상”=결함은,운남성 정부가 주도하여 제정한 《판법》중,전통 개념의 “보이차 ”에 “보이생차”와 “보이숙차”의 2종류가 있는데 이것을 관방법규에서 긍정(인정)하는 것을 가르키는것으로 “보이생차”에 대한 개념이 처음 나타났을 때 국가 차엽 질량검측 검험중심 주임인 락소군 이 2006년 곤명의 1차 전체회의에서 :“운남성 스스로 자기가 던진 돌에 자기 발을 맞게 될 것이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陈宗懋在2009年6月说,“《普洱茶地理标志产品保护管理办法》的实施并不能从根本上解决普洱茶遭遇的困境,甚至还将长期贻害,核心问题就是普洱生茶的问题。”“但是现在木已成舟,国家的法规都出台了,我们再说也没有意思了,想要重新修改普洱茶标准,谁知道要等上多少年?”陈宗懋表示。

" 2009년 6월 진종무 - “《보이차 지리표지산품 보호관리판법》실시는 보이차가 처한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해를 끼칠 것이다. 그 핵심문제는 보이생차의 문제에 있다. 하지만 현재 국가법규로 되어 있어 몇 년을 기다려야? 보이차 표준을 새롭게 쓸 수 있을지 말할 수 없다. ”

CCTV 운남 보이생차의 약리작용이 없음을 보도
事实上,普洱茶在2007年下半年突然价格“崩盘”与媒体的报道有关,与“普饵生茶”的真实市场情况有关。2007年年中,央视二台报道云南普洱茶没有宣传的药理作用,媒体基于普洱生茶(一般不发酵绿茶)实验结果的报道,全面否定了真的后发酵普洱茶已有的特殊药理作用。

사실 보이차의 가격이 2007년 하반기에 돌연 “붕반=폭락”한 것은 언론에서 “보이생차”의 대해 보도한 것이 실제로 시장정황과 관계가 있다. 2007년 중반 CCTV는 운남보이차의 약리작용이 없음을 2편 보도하였다. 언론에서 보이생차(일반 불발효 녹차)의 실험결과를 보도함으로 진정한 후발효 보이차의 특수 약리작용까지 부정하게 되었다.

“这使云南政府处于一种非常尴尬的境地。”云南知名茶人说,“如反驳央视说生茶不是普洱茶,标准已赫然列立;如说生茶是普洱茶,自己已经钻进了否定的实验结果和舆论。”

“이렇게 되자 운남정부는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CCTV가 보도한 생차는 보이차가 아니라고 반박하게 되면 스스로 생차도 보이차 라고 표준에는 분명하게 확립 해놓고는 (보이)생차에 대한 실험결과와 여론은 부정하는 것 이 되기에 ” - 운남 저명 차인

생차의 보이차 편입 후 상황
如果严格按照“03标准”的定义,上世纪70年代以来普洱茶的年产量不过三四千吨左右,而到2006年云南官方公布的普洱茶(按06标准)的产量达到8万吨,2007年这个数字是10万吨,“其中生茶占了大部分比例”。与此同时,普洱茶市场的畸形“繁荣”,还使云南勐海、澜沧江流域和西双版纳地区的野生茶林惨遭各路资本的蹂躏,普洱茶市场开始进入“混乱的战国时代” 在这股浪潮下,由于云南省大部分茶叶原料被用于普洱生茶加工,导致传统的滇红和少部分绿茶产量减少,迅速失去了许多原有的市场。

70 년대 이후 "03년 표준"(운남성 차엽협회 제정 운남성 보이차 지방표준) 정의에 따른 연간 생산량은 3천-4천톤 좌우, 06년 운남관방공포 표준(06년 운남성 질량 감독국 제정, 생차 편입된 신 “보이차 정의”) 8만톤 에 도달, 2007년 수치는 10만톤, " 이중 생차의 비율이 거의 대부분 이였다“ 아울러,보이차 시장의 기형적 “번영”은 ,운남 맹해、란창강 유역과 서쌍판납지구의 야생차 산림을 자본으로 유린하여 황폐하게 하였으며,보이차 시장은 혼란한 전국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파도 속 에서,운남성의 대부분 차엽원료는 보이생차의 가공에 사용되었고 전통적인 전홍과 일부 녹차의 생산량은 감소하여,기존 시장의 대부분이 급격하게 사라졌다.

보이생차(=쇄청녹차)의 문제점
“只有经过后发酵过程成为真正的普洱茶才有市场和更多消费者,某些人以为把云南的大叶晒青绿茶换个'普洱生茶'的名称就可以行销全国了,这种想法和做法太过幼稚。要知道全中国各种各样优质绿茶品种数不胜数,云南明显是犯了以劣质品去与优质品竞争的战略错误,失败是必然的。”,“不要说向全国发展,炒青绿茶、烘青绿茶和蒸青绿茶先后在云南本土上市后,晒青绿茶基本上被淘汰出了云南城市的绿茶市场,只能保留在一些乡村和小地方。”
“시장과 많은 소비자들은,후 발효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보이차의 재능이 있다고 여기는데 운남 대엽 쇄청녹차를 ‘보이생차’로 이름을 바꾸어 중국전역에 판매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중국 전역엔 각종 각색의 우수한 녹차품종이 수없이 있는데 운남이 떨어지는(녹차)품질로 좋은(녹차) 품질과 경쟁하는 것은 전략의 오류로 실패가 불가피하다. 전국을 향한 발전은 불필요하다. 초청녹차. 홍청녹차, 증정녹차들이 앞 다투어 운남본토의 시장에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쇄청녹차는 운남의 녹차시장에서 도태 될 것이며 작은 향촌이나 지방에서만 보존될 것이다.

딜레마 속의 타협
针对社会上愈演愈烈的普洱茶热后的一落千丈,2008年以来黄炳生多次建议抓好普洱茶保护立法和质量标准修订,他认为“普洱茶”不能以“生茶”、“熟茶”来划分,这与普洱茶的后发酵特性相冲突。他同时呼吁云南茶叶界,从茶农到厂家、商家,从教学、科研到技术推广,从生产、销售到消费,要做到科学种茶,认真做茶,诚信卖茶,健康饮茶。

보이차는 불황에 빠지고 2008년 이래 황병생은 “보이차는 생차, 숙차로 구분하면 안 된다. 이것은 보이차의 후 발효라는 특성과 충돌하는 것이다” 하며 수차례 보이차 보호입법과 질량표준의 수정을 건의 한다. 또한 운남 차엽계, 차농, 제조업체와 상인들에게 생산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 까지 과학연구, 기술 진흥 교육을 하여 과학적으로 차를 기르고科学种茶,진실 되게 차를 만들어认真做茶,참 된 신용으로 차를 팔아诚信卖茶,건강한 차를 마시게健康饮茶 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普洱茶的运作经验在于,普洱茶的文化和历史比其他茶有更大想象空间,所以无论云南的政府、企业还是科研单位都在全力打造普洱茶。居于种种危机的出现与蔓延,云南省决心对普洱茶产业进行法规规范,从而获得最大实惠,使“普洱生茶”的生存道路.越走越长

보이차 운영의 경험상 ,보이차의 문화와 역사는 다른 차와 비교해 많은 상상의 공간이 있기에 운남정부와 기업 그리고 연구기관들이 보이차를 위해 전력으로 힘 써야한다. 이러한 위기의 출현과 확산 에서,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보이생차”의 월주월장越走越长이 생존길이므로 보이차 산업진행 법규규범에 대한 운남성의 결심이 있어야한다.

현실 상황
目前,正常条件下储存四五年的普洱茶普遍被认为比一两年的茶品质好,价钱上也要相差很多倍。由于“普洱生茶”的品质会随储存年份变化在不同程度上趋近于经过后发酵的“普洱熟茶”,因此市场也出现了以熟茶充当储存多年的生茶的情况,成为普洱茶被“炒作”的重要原因。

현재 정상적인 조건에서 4-5 년 보관된 보이차는 1-2 년 된 차에 비해 품질이 좋아 가격의 차이도 몇 배가 된다. 보이생차의 품질은 저장되어 후 발효 된 ‘보이숙차’ 의 변화가 기간에 따라 다름이 기본이 된다. 시장에서 숙차로 충당할 생차를 몇 년 동안 저장 한 정황이 나타난 것도 보이차 “초작=투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普洱生茶在市场上出现,的确是普洱茶能够被大肆炒作的一个重要原因。”云南省茶叶协会会长黄炳生说,“在如此不切实际的暴利价格目前,一些地方政府非但没有看到其长期危害性,非但不能给予理性、正确的价格引导,甚至在当中推波助澜,贻害众生。”

“보이생차의 시장출현은 확실히 보이차의 극한 투기를 가능하게 한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운남성 차엽협회 회장 황병생 - “목전의 폭리가격은 비현실적 이였으나 지방정부는 장기적 위해성을 간과하고 비이성적 이였으며 정확한 가격을 유도하지 못함으로 이 파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손상을 주었다.”

“不太准确的'普洱生茶'被推广,现在普洱茶的概念的确已经被混淆了。由于传统饮用云南绿茶与后期宣传的原因,也有一部分人对于'普洱生茶'的概念是接受的,马上取消这样的称呼也不现实。由于普洱茶无论在发酵时间还是发酵程度上也不容易量化操作,所以成为了一些人钻空子的机会。”

“매우 부정확 한 기준의 '보이생차'가 확산 됨 으로, 현재 보이차의 정확한 개념은 어지럽게 뒤 섞여있다. 전통 음용의 운남녹차를 선전한 것이 원인인데 이는 일부 사람들의 '보이생차' 에 대한 개념이 받아들여진 것으로,(이것을) 바로 취소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한 보이차는 발효기간에 따른 발효정도를 계량화하기 쉽지 않는데, 일부 사람들이 그 허점을 이용하는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방안 모색
他表示,云南省茶叶协会正在考虑新的工作方案,以应对由“普洱生茶”带来的被动局面,即动员商家在今后重点向顾客推销“熟茶”,一方面尽量不要再把“生茶”当作普洱茶来销售,另一方面也要担负起告知消费者的责任,“尤其是当年生产,没有经过发酵过程的云南晒青毛茶其实就是绿茶,最好不要再当作普洱茶喝了”。

운남성 차엽 협회는 "보이생차"의 피동적 상황에서 새로운 방안의 작업을 고려하고 있다.기업을 통해 “숙차”의 판매에 중점을 두게 하는 한편 소비된 량 만큼 바로 "생차"를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또한 소비자에게도 “당년에 생산된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은 운남쇄청모차는 실제에 있어 녹차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당년에 만든 보이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고 알려 책임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개정 증보판> http://seoku.com/442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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