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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급(號級) 골동 차사전(茶事典) /보이차 근원탐색과 유변(流變)

보이차에 관한 전문 책은 다양하게 발행되고 있다. 그 중 대만에서 골동 보이차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기에 오늘날 보이차 광풍에 어울리는 책이 발행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보이 생차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오는 가운데 인급 호급 보이차의 폭등은 무엇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임을 대변해 준다.

평소 보이차를 마실 때, 맛으로 마시거나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마신다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책이겠지만 보이차로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거나 혹은 보이차를 투자의 대상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호급보이차를 모르고는 논할 수 없다. 오늘날 보이차 홍인이나, 동흥호, 강성, 송빙, 경창, 복원창 등과 같은 차를 논할 때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본인이 마셔보지 않았거나 모르면 모두 가짜라고 치부해 버린 그 차들이 현재 차를 현금으로 바꾸는데 가장 빠른 차가 되어 있다.
[책 표지, 호급 골동 차사전]

홍콩 보이차 시장과 대만 시장은 우리나라와는 체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해놓은 질서가 모두 정직한 모범 답은 아니겠지만 보이차에 관한 그들의 손에 의해 질서가 잡히는 부분에서 상당부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은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호급 골동보이차에 대한 자료가 집대성되어 있다. 석우연담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의 글 일부와 저자의 서문을 번역하여 올린다.

편집자 서

오행도서공사가 일직이 2003년에 곧바로 착수해서 편집을 추진한 ≪호급차사전(號級茶事典)≫이 거의 십 년간에 걸친 대대적이고 광범위한 자료수집 끝에 ≪호급보이차사전≫이 마침내 2012년 연중에 출판될 예정이다. 본서의 저작자인 양개(楊凱)는 2005년에 ≪다예·보이호예(普洱壺藝)≫의 칼럼리스트를 담당하였는데, 본인과 그는 똑같이 이공계 출신이라서 그의 이공치학(理工治學)적 엄근(嚴謹)한 합리적인 추론을 이용한 아울러 거의 실전하다시피 한 운남보이차 역사에로의 환원(還原)적 관점에 대해 상당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의 앞서 지은 ≪대청(大淸)에서부터 중차(中茶)까지≫를 발표하는 동시에 본인은 바로 그와 함께 공동으로 ≪호급보이차대사전≫을 집필할 것을 요청하였으니, 그의 실사구시하는 치학태도를 빌어 보이차 역사를 명백하게 본서에서 드러내고자 기도하였다. 게다가 장차 이 책이 전 보이차시장을 지탱할 고단(高端)적인 지주가 되길 미리 예측해본다. 이 시점에서 바라건대 본서가 당신의 가장 유력한 전문적인 공구서사 되길 바라마지 않는바, 이는 곧 본서 편집부에서 이 책을 출판한 최대의 기대치인 것이다.

호급 골동 차사전 본문

* ≪호급 골동 차사전—보이차 근원탐색과 유변≫ 안건이 마침내 최종적으로 결정나다!

2010년 초, 오행도서공사의 량준지(梁俊智) 선생이 본인과 함께 보이차 공구서를 새로 한 권 쏘내자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흥분해서 즉시 불철주야하다시피해서 문헌자료를 찾고, 지인들을 탐방하며 구도를 구상하고, 문자들을 어찌 구성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본인 자신이 중국의 출판사에서 일을 하며 차문화연구는 단지 그저 아마추어적인 개인적 애호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모든 건 각고 면학하여 일분일초 짬을 내어가며 겨우 완성해낸 것이다.

당시 량준지 선생과 본인과의 약정은 2010년 11월에 이 책을 출판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각가인 락봉봉(駱芃芃) 여사가 본서를 위해 제자를 써주셨기 때문에 ‘경인봉봉(庚寅芃芃)’이란 글자가 있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다시 홍콩과 이무(易武), 석병(石屛), 하관(下關) 등지에 가서 대량으로 일차적인 자료들을 찾아내고 인물들을 찾아 담론하면서, 단속적으로 이미 완성한 원고의 일부 글자와 도편의 수정하였으나, 본서의 구조가 이미 설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내용은 이 책속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구조 틀 안에서 역사와 문화부분은 본인이 맡아 썼고, 노차도록은 오행도서가 도맡아했다. 그러나 도록 중에 대한 글에 대해선 본인은 그래도 객관적으로 설명을 했다.

≪대청에서부터 중차까지-가장 진실한 보이차≫의 창작경험을 흡수하여, 본서 가운데에 문헌인용문에 대해서는 정간(精簡)하고 적당한 해설을 붙였으며, 아울러 대량의 원시 파일도편은 책속에 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용문의 가신도(可信度)를 증가했을 뿐더러 또한 그 인용문에 대해 의문이 있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히 원시파일도편을 참조해서 스스로 해독하고 발굴할 수 있게끔 했다. 물론, 독도(讀圖)시대에 독자의 시각적 인상과 역사체험을 풍부하게끔 하는 것 역시나 필자의 조그만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반드시 승인할 건, 본서는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학술적인 전문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 본서의 대다수 내용은 엄격한 비평을 견뎌낼 거라 믿는다. 이 또한 필자가 역사학자인 림초민(林超民) 선생께 서문을 부탁드린 진심이기도 하다.

2010년 3월, 한국학자인 짱유화 교수가 본서의 한 교정본을 보고서는 매우 놀라 뛸 듯이 기뻐하며 귀국 전에 밤을 새워가며 통독하면서 번체자의 교정을 도왔으니, 믿어 의심치 않는바, 이는 절대로 짱 교수의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인가내진 애호인 바이다.

본서의 출판 이전에 특히 세계 차문화 교류협회 명예회장인 하작여(何作如) 선생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다. 필히 인정할 것은, 본인의 노차지식 대부분은 등시해(鄧時海) 선생, 하작여 선생, 소영신(蘇榮新) 선생 세 분의 가르침에 힘입은 바로서, 이들 세 분의 호자급 노차는 나한테 뭇 평론가들과 감정인들과는 다른 독립적인 보이차 가치관을 우러나게 해주었다.

하 선생은 일직이 나를 대신해서 대만에 가서 차수(茶壽, 108세를 이름) 노인 리불일(李拂一) 선생을 위문하였으며, 나와 함께 홍콩과 이무의 노차인(老茶人)과 노차장(老茶莊)을 방문하기도 했고, 나한테 아주 선심 써서 모든 노차들을 개방해주었다. 그는 또한 전화로 항상 장시간동안 함께 학술을 토론하기도 하였는데, 더욱이 그가 보이차는 오래 묵을수록 더욱 진한 향내가 나다는 매커니즘을 밝히고자 60여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식물생리학과 매제제공정(酶製劑工程), 미생물발효기술 등 고삽(枯澁)하고도 전문적인 고도의 깊은 학문을 학습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더욱 그에 대해 충심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다.

본서의 창작은 또한 허다한 각기 다른 시기에 친히 보아차 생산과 연구 및 판매에 참여했던 이들과 국내외 오랜 경력의 마니아들의 두터운 사랑에 힘입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 자신 한 완전한 보이차관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게다. 그야 물론 운남에서 재스민의 대량 식목과 이용을 개척한 나의 후배 로명(魯明) 선생과 일직이 나한테 대량의 자료를 제공해준 역사학 석사 류연(劉燕) 양, 그리고 나의 가족 여러분들 모두에게 진정어린 정중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모교를 말하건대, 1982년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대학 입학증을 동시에 받았다. 기이하게도 나는 장춘광기(長春光機, 광학정밀기계)학원(學院)이란 전문범위가 극히 작은 반공반리(半工半理)의 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4년 후에 나는 다시 업종을 바꿔 출판업계에 뛰어들어 아동도서 편집을 도맡았다. 고개 돌려 사방을 바라봄에 나의 아주 많은(전부는 아닌) 친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전공과 무관한 영역에 몸을 담았다. 예컨대: 경찰, 회계사, 고고학자, 한의사, 음악교수, 대형트럭 운전사, 밀수범, 관료, 기업가, 변호사 등등, 학생인구수의 비례로 말하자면, 이 학교는 졸업 후의 취업경향이 제일 기특하고 궤도가 아주 다양한 학교일게 틀림없을 거 같다.

나는 우리들의 야만적인 생장을 윤허해준 청춘의 지난 나날들을 그리워하는 바이다.

본서의 결함에 대해서는, 그건 바로 차관(茶館)의 문화사에 대해서 그리고 탐방 중에 접촉했던 이들의 펄펄 살아 숨 쉬는 운명에 대한 관심부족인바, 이것들은 아무래도 나중에 다른 책에서 묘사해낼 작정이다.

2012년 4월 1일 새벽녘에 곤명(昆明)에서 양개(楊凱)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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