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명차 최해철 대표
차는 마시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함이 때로는 의문스럽게 느껴질 때 우리는 가끔 그 당연함의 당연함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차는 역시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보이차 시장의 중심이랄 수 있는 광조우의 팡춘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매시장에서 횡 횡하고 있는 거래 행태를 보면 차가 차가 아니라 일종의 주식처럼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이상한 주식입니다. 특정 차가 차창에서 출시되기도 전에 일부 세력들이 가격을 잠정적으로 결정하여 선입금을 받습니다.
박스 단위로 선입금을 받는데, 가격은 입금 시기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동되며 출시가 되고 가격이 결정되면 선입금 한 만큼씩 일정량의 차를 나누어 같고 제2, 제3의 거래처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세력들이 연합하여 특정 차를 사고 팔고를 되풀이 하며 가격을 조절하는 가운데 죄 업는 차만 폭등 폭락을 거듭합니다. 똑 같은 차가 한달 사이에 수십 수백 만원씩 차이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 깡통을 차는 사람들이 뒤섞여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곳이 지금의 보이차 도매시장입니다.
찻집에서 조용히 차를 음미하고 품질을 평가하기보다는 세력들의 움직임을 하루라도 빨리 간파하는 것이 차업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좋은 차를 생산하기보다는 유명한 차를 만들어야 되고, 포장되어 있는 차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화려한 포장에 찬란한 문장들이 손님을 유혹합니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부분의 소상인들도 치고 빠지는 식의 대열에 편승하고자 혈안이 되어 이리저리 몰려다니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이차 업계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차창에서도 제작 발표회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투기를 조장합니다.
5년뒤 10년뒤 자식들 학비를 벌어주는 차, 집도 사고 장가 밑천도 만들어줄 수 있는 차라고 부추기며 마치 지금 사지 않으면 큰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습니다. 박람회장의 가장 좋은 자리에 휘황찬란한 디자인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차 품평대회 시상식의 맨 윗자리는 항상 그들이 차지하곤 합니다.
매번 마셔보면 그렇고 그런 차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세상에 좋은 말은 다 풀어놓은 듯한 설명서는 기본입니다. 차창에서 출시된 상태 그대로 박스에 손도 되지 말고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했다가 훗날 되 팔아야 가장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차의 품질에 관계없이 거대한 자본으로 홍보하는 유명 브랜드만을 좇아가고 그렇게 구입해서 또 그렇게 보관만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언감생심 맛이라도 보려고 박스를 열거나 개봉한 흔적이 있는 차는 제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박스에 택배 용지가 붙어 있거나 낙서한 흔적이 있어도 가격이 떨어집니다.
도대체 박스에 낙서가 있거나 택배 용지가 붙은 것이 차맛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차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마시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조건에 상관없이 맛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소장가 아니 투기꾼들은 차맛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아예 관심도 없거나 마시지도 않습니다. 아니 마셔도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출처불명의 자본으로 시장의 주류가 되어 차값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문화라고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귀속되어 그렇게 흘러가고, 저의 한숨은 그저 흐름을 좇아가지 못한 자의 넋두리 일 뿐이지요
작금의 상황을 모를 리가 없는 제가 오운산을 창업하면서부터 시작한 고뇌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미 가격은 오를 대로 오른 진정한 고수 원료를 사용하여 브랜드 인지도도 미약한 업체에서 출시한 비싼 차가 과연 팔릴 수 있을까요?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저는 오히려 여기에 오운산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꾸준히 노력하여 언젠가 오운산의 정직함이 알려진다면 한국인이 만든 보이차 오운산 브랜드는 세계 속에 영원히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차는 마시는 것입니다.
차맛은 어디에도 요행이란 없습니다.
맛있는 차는 역시 맛있고 맛없는 차는 맛없습니다.
갈릴레이의 한숨처럼 그래도 지구는 돌고 수많은 차산을 돌고 돌면서 그래도 맛은 언제나 정직하다는 믿음이 확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수많은 박람회에 참가하고 수없이 많은 차인 들을 만났습니다.
가격만 물어보고 이상한 눈빛만 주고 가는 사람, 차업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일장 연설을 해주시는 분, 지금까지 생산한 모든 차를 사 줄 테니 자기 브랜드 밑으로 들어 오라는 상인, 차맛도 보기 전에 가격부터 깎아달라는 분 등등 모두들 저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손님이기에 정성껏 차를 우리다 보면 종종 진정으로 오운산이 만든 차를 알아주시는 분들도 만납니다.
이번에 잠깐 귀국하여 광주 김대중커벤션센터에서 열렸던 박람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중국과는 달리 한국의 박람회에서는 매번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여러 고객님들의 응원이 있지만 광주는 늘 직원들만 참가하다가 저로서는 처음 방문한 곳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서울과 대전 등에서 오로지 저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오신 분, 저희가 만든 차를 맛보기 위해 일년을 기다리다 오셨다는 분, 선뜻 거금을 현금으로 주시고 오운산 차를 구매해주신 분 등등 참으로 고마운 분들 덕분에 오늘도 이상하게 흘러가는 차세상이지만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만나 뵌 어느 고객님의 말씀처럼 차는 애초에 투자, 아니 투기의 대상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차 구입해서 마시다가 남아서 자식에게 아름다운 유산으로 물려주면 좋고, 그 차가 가격이 올라서 어려울 때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오운산 차가 아니더라도 자가가 마셔보고 좋은 차를 좀 넉넉히 구입해서 지인에게도 선물하고 진실한 생산자를 키워주는 천사 같은 자본가 에게는 큰 절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차는 마시지도 않으면서 거상 행색 하면서 묻지마 투기씩으로 수십수백 박스씩 쌓아놓고 이차가 지금 얼마나 올랐느니 자랑이나 하고 다니는 투기꾼들의 꼬라지는 저는 정말 보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오운산 차는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투자하지는 마세요. 지금은 그럴 분도 없겠지만 누군가 원한다 해도 저는 그렇게는 판매하지 않겠습니다. 오운산 차도 당해 년도 원료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매년 일정부분 인상되고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폭등하여 부자 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판매한 원금은 언제든지 보장하고 반품교환 또한 가능하지만 오운산 차에 투자하면 부자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제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차업을 하는 입장에서 다소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의 뜻이 닫지 않으면 결국은 모든 것이 저의 책임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부디 오운산 차는 쌓아두지 마시고 기쁠 때나 슬플 때도 늘 곁에 두고 호흡하듯 물 마시듯 즐기는 차이기를 소망하는 마음입니다.
차업도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고 그로 인한 경제적 파생 효과도 적지 않습니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기도 사실은 어려운 것이지요. 정당한 투자라면 나쁜 것도 아니고 늘 어렵기만 하다는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차는 이러한 현실과는 멀어지게 하고 싶습니다. 차 한 잔 하는 순간만이라도 물질만능의 세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게 하고픈 순진한 생각이 빗어낸 망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수백 수천년 동안 녹차처럼 그해에 만들어 그해에 마시던 보이차가 시장에서 이렇게 변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경제가 발달하고 홍콩을 비롯한 고온 다습한 환경에 노출되었던 보이차가 보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하면서 새롭게 독특한 맛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기술로 축적되어 오늘날 노차라는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얼마 남아있지 않은 백년 세월의 호급,인급 차들이 맛의 호불호를 떠나 희소성 만으로도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다 보니 각종 부작용 또한 발생하고 있습니다. 좋은 원료로 제대로 만들어 당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차를 만들기보다는 대중에 영합하는 적당한 원료를 적당히 섞어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묵힐수록 좋아진다는 이유를 들어 무조건 수장부터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를 오로지 치부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투기꾼들이 시장에 개입하여 순수한 차인 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후 발효차인 보이차의 특성상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분명히 새로운 맛으로 탄생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나 그해에 마시기 힘든 적당한 원료로 적당히 만든 차는 훗날에도 적당한 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 또한 현재 전 중국인이 몇십년 마셔도 남을 만큼 엄청난 물량이 저장되고 있는데 언젠가는 노차라는 환상이 사라지면서 폭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가 오운산의 핵심사상으로 當年好茶 經年新茶 (그해에 만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차,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를 주장하는 원인과 경영이념으로 仁做仁茶 (사람이 만든 차 사람이 마십니다) 라고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꿈으로 시작한 오운산이기에 제가 오랫동안 차업을 하면서 경험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진정한 차인들이 일구는 참다운 차문화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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