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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엽하는 농민

 

어제 빗길을 달려 미엔디엔(미얀마)을 다녀왔습니다. 차 철엔 원료 수급 때문에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어 차산을 개발하기 어렵습니다. 미얀마는 시쐉반나에서 린창까지 길게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연결되는 통로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멍하이를 출발하여 징홍(京紅)-동펑(東風)-따멍롱(大勐龍)-멍송(勐宋)-만산(曼傘)을 거쳐 중국 최후의 마을 뤼상춘(呂相村)을 경유하는 코스입니다. 만산에서 저희와 인연이 있는 젊은 부부를 동반하여 국경을 통과합니다. 오래전부터 기회가 되면 안내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번에 시간을 내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에 결혼하여 두 살배기 딸내미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둘 다 첫눈에 선량하게 생겼는데 생긴 만큼 착합니다. 집안 어른이 하고 있는 고무나무 경작 일을 도와왔는데 기회가 되면 꼭 차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입니다. 오랫동안 차업을 해온 사람보다 처음부터 아예 모르는 젊은 친구를 교육시켜서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빗길이라 비포장도로에 접어들면 차가 휘청휘청합니다.

 

다행히 우리 차는 비록 중고차를 구입했지만 밑판이 높아서 비포장도로나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합니다. 구입한지 삼년 만에 십만키로를 달렸으니 산길에 단련된 도부장의 운전 솜씨 또한 이젠 웬만한 산악 전문 레이서 못지않습니다...

 

저도 중국에서 따로 필기시험을 쳐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지만 산길은 웬만하면 직원에게 맡깁니다. 뤼상춘은 하니족 마을인데 2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주로 바나나 농장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을을 지나 10여분 중국 국경 검문소가 나옵니다.

 

대나무 작대기 하나를 걸쳐 놓았는데 검문소라기보다는 톨게이트 개념입니다. 큰 차는 50위안 작은 차는 30위안의 통과료를 받습니다. 마침 젊은 친구의 마을 사람이 검문소를 지키고 있어서 무료 통과입니다. 다시 또 산길을 10 여분 달리면 미얀마 국경검문소가 나옵니다. 총도 들고 있고 제법 그럴 듯합니다 만 대나무 막대기 하나 걸쳐 놓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가냐? 뭐하러 가냐고? 묻습니다. 젊은 친구가 우리 자동차에 쓰여져 있는 석가명차와 오운산 상표를 가리키며 차업하는 사람인데 차밭 보러 간다니까 오케이! 세세! 그냥 통과입니다. 앞으로 종종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차농들에게 선물로 주고자 만든 오운산 다기셋드 두벌을 건네주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건네니 자주 오랍니다...

 

근처에 사는 중국 사람들은 국경이라는 개념도 없이 그냥 편하게 왕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중국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묻지도 않는데 굳이 밝힐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도 국경인지라 엄밀하게 말하면 밀입국이고 차를 가져오면 밀수가 되는 것이지요.

 

괜히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엔 다소 긴장도 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젠 좋은 차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린창지역의 미얀마 국경지대인 고간이라는 곳은 아직도 내전중이라 수시로 총소리가 들립니다. 그래도 정말로 좋은 차가 있다면 방탄복 입고라도 찾아 가고픈 심정입니다.(쫌 심했나? 글을 써놓고 보니 약간 이상합니다...)

 

사실 현제 가격대비 가장 품질이 좋은 차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지만 미얀마 쪽의 차라고 생각합니다. 윈난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미얀마, 라오스, 배트남입니다. 미얀마가 접하고 있는 국경선이 가장 길고, 라오스는 이무 괄풍채와 가까이 있습니다. 베트남은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홍허 위엔양(紅河元陽)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태국 차들도 가끔 보이는데 라오스와 인접하고 있어서 라오스 차들이랑 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독특한 차맛의 특징들이 있으나 대체로 가공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은 덜 알려졌지만 생태 환경과 차나무의 수령 또한 좋은 지역을 발굴하여 독자적으로 잘 개발한다면 좋은 고수 원료를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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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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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골동보이차에 대한 대부분의 글들은 중국인의 시각에서 본 결과물 들이었다. 이 책은 독특한 창고 환경으로 인해 발효될 수 있었던 홍콩시장을 조명한 것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골동 보이차 거래의 국제적인 마스터가 집필하였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명한 보이차의 실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풍부한 사진자료로서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실물을 사진으로 담아 골동보이차의 모습들을 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특히 골동보이차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과 감평이 붙어 있어 접할 수 없는 이들에게도 쉽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차문화계의 서적 중에서도 오랫동안 보관하고 소장할 수 있는 현재 한국에서 나온 골동보이차에 대한 마스터피스, 즉 최선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골동 보이차의 탄생

현존하는 골동 보이차 전부는 홍콩 지역에 있 창고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보이차는 중국 운남성에서 생산되어 내수 혹은 수출을 통해 여러 지역으로 유통되었으나, 홍콩을 제외한 어느 지역에서도 오래된 보이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홍콩 지역의 창고를 통하여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골동 보이차 중에서 가장 오래된 차는 1910년대에 생산된 진운호와 홍표 송빙호 등이 있다. 진운호와 홍표 송빙호의 정확한 생산 연도는 알 수 없지만 문헌과 유통 과정을 통해 1910년대 차로 추하고 있으며, 이는 보이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골동의 호급 보이차가 홍콩 지역에서도 여러 창고에서 쏟아져 나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호급 보이차는 몇몇 차루(茶樓)에서 운영하 창고를 통해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 그 이전에는 차의 존재조차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호급 보이차가 나온 대표적인 차루는 비교적 규모가 큰 돈황차루(敦煌茶樓)와 용문차루(龍門茶樓)이며, 이보다 규모가 크지 않은 곳으로는 육우차실(陸羽茶室)과 금산루(金山樓)가 있다. 현재는 1933년에 오픈하고 1976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육우차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차루들은 홍콩 반환 시점인 1997년을 전후하여 모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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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호급 보이차(1920~1960년대까지)

호급 보이차에 앞서서

 

1. 호급 보이차의 종류

1) 복원창(福元昌)

2) 송빙호(宋聘號)

3) 동흥호(同興號)

1920년대 동흥호·박지(同興號·薄紙)

1930년대 동흥호·후지(同興號·厚紙)

4) 동경호(同慶號)

쌍사동경호(雙獅同慶號)

용마동경호(龍馬同慶號)

5) 동창호(同昌號)

동창호·황금당(同昌號·黃金堂)

동창호·황문흥(同昌號·黃文興)

6) 정흥호(鼎興號) (홍표, 람표, 자표)

7) 경창호(敬昌號)

8) 강성호(江珹號)

9) 동창황기(同昌黃記)

10) 건리정송빙호·백지(乾利貞宋聘號·白紙)

11) 사보공명(思普貢茗)

12) 복록공차(福綠貢茶)

13) 맹경원차(猛景圓茶)

14) 말대긴차(맹경긴차, 정흥긴차)

15) 기타 호급 보이차

 

2. 호급 보이차 이해와 트렌드 변화

1) 현재 호급 보이차는 당시에 고급 보이차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2) 호급 보이차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 발효이다

3) 현재 남아있는 호급 보이차는 아차나 산차로 만든 차가 없다

4) 선 발효 제다법의 등장에 따른 숙차의 탄생

5) 호급 보이차 가격 형성의 특징

 

저자 소개

 

글 김경우

1969년 경남 의령 출생.

1999년부터 차와의 인연으로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서 차와 차도구 전문점인 명가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 매월 중국과 대만을 다니면서 중국차를 연구하고 있다. 2004년과 2006년에는 중국차를 마시기 위한 다구이자 예술적 품격을 지닌 중국 자사호 작가를 직접 초청, 국내에서 전시회를 가져 많은 사람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주요 저서로 중국차의 이해, 중국차의 세계가 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차
국내도서
저자 : 박홍관
출판 : 형설출판사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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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32 - 병차 찍기 -

 

병배가 완료된 모차는 일단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순서가 되면 압병실로 옮깁니다. 압병(壓餠) 방법은 전수공과 반수공 자동으로 나뉘는데, 전수공은 압병할 때 돌로 만든 석모(石磨)만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먼저 상자에 들어 있는 모차를 한상자 씩 오픈하여 작업다이에 솟아 붓고 저울로 원하는 양만큼 정해진 무게를 측정합니다. 대량 생산하는 차들은 흔히 병차의 앞면과 뒷면 그리고 중간에 들어가는 모차를 구분하여 측정합니다.

 

일반적으로 백호가 많은 여린 잎은 앞면에 깔고 중간에 들어가는 모료는 다소 크고 파쇄된 잎을 넣습니다. 차맛의 좋고 나쁨은 찻잎의 크기와 모양과는 상관없습니다. 참고로 경매, 나카 지역의 고수차는 잎이 작고 검은 편이고, 이무 지역은 줄기가 길죽한 편이며 노만아, 파량 등은 백호가 많고 광택이 있습니다.

 

흔희 보기 좋은 떡이 맛있다는 논리로 차를 눈으로만 보고 마시지도 않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는데 자칫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스텐으로 각종 차의 무게에 맞게 제작한 원통형의 도구에 바짝 마른 모차를 담습니다. 그리고 물을 끓여서 수증기가 치솟고 있는 곳에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린 모차를 담은 원통형의 도구를 잠시 올려놓습니다.

 

10초 전후의 시간이 지나면 통속에 수북하던 모차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착 가라 앉습니다. 그리고 약간 두꺼운 마로 각종 차의 형태에 맞게 제작한 포대기에 촉촉한 모차를 옮겨 담고 사이즈에 맞게 주물러줍니다. 자동은 기계로 압착하여 완성하는 방식이고, 반수공은 우선 기계로 살짝 눌러서 틀을 잡은 다음 석모로 눌러서 완성하는 방식이며, 전수공은 처음부터 석모로 눌러서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기계를 사용하는 방식은 중, 대형 차창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에 적합한 방식입니다. 석모를 사용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형 차창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대부분 반자동식인 기계와 석모를 같이 사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30kg전후의 돌을 맷돌처럼 둥글게 깎아서 윗부분에 손잡이를 만들어 들었다 놨다 하는 방식입니다. 평평한 공간에 나무판자를 깔고 그 위에 차창의 규모에 따라 적당한 개수의 석모를 올려놓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사용합니다. 전수공인 경우 압력이 부족하면 사람이 석모위에 올라타서 꼰들꼰들 좌우로 몸을 움직여 압력을 조절합니다.

 

기계를 사용하면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가 있어서 편리합니다. 기계 한 대로 하루에 1000여편의 병차를 압병할 수 있고, 석모를 사용하면 차의 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21조로 보통 500편 정도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압력의 정도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강하게 하면 향을 보존하기에는 좋지만 모차의 훼손이 심하고 발효가 더딜 수 있습니다. 약하게 하면 병면이 아름답고 발효 속도도 빨라지지만 운송과 보관의 불편함이 있습니다.

압병 할 때는 손가락이 다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하고 특히 사용하는 수증기의 물은 아주 중요합니다. 반드시 깨끗한 물을 사용해야하는데, 바짝 마른 모차에 수증기가 들어가면 차맛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압병 후 건조 과정을 거쳐 다시 원래의 무게에 도달하게 합니다만 물속의 성분이 모차에 남아서 차맛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하관 차의 특유한 향이 이 물맛에서 기인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은 설일 뿐 물의 영향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하관차의 연기 향은 원래부터 가진 원료의 특질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운산은 반자동식 압병을 하며, 다소 번거롭지만 생차 제작 과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은 증류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막 압병한 차는 그야말로 따끈따끈합니다. 고온인 수증기의 영향입니다. 혹자는 압병할 때 분출되는 고온의 수증기가 살균 기능을 한다는데 죄송하지만 모르는 말씀입니다.

 

뜨겁긴 하지만 10초 전후의 증기로 살균할 정도는 아닙니다. 증기가 들어오는 아래쪽은 뜨겁지만 위쪽은 그냥 따뜻한 정도입니다. 더구나 후발효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보이차를 생산 단계에서 살균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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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료 섞기 -

 

513일 귀국하여 18일부터 시작한 대구차박람회에 참가하고 24일 다시 운남으로 돌아 왔습니다. 213일에 출국하여 3개월 만의 귀국이라 늘 응원해주시고 도움주시는 분들을 만나 뵙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지금 막 차창에서 올해 오운산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서 급한 일들만 처리하고 서둘러 들어 왔습니다.

 

68일 서울박람회에 맞추어 다시 귀국하는데 그때는 부산에서 15일부터 열리는 박람회에도 참가할 겸 한달정도 한국에 머물 생각입니다. 대구박람회에서 올해 저희가 생산한 샘플 차를 시음한 많은 차인들이 한결같이 격려의 말씀들을 해주셔서 늘 바쁘지만 하루하루 보람찬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오운산에서 선택한 각 지역에서 생산된 보이차 원료인 모차는 일단 전부 차창으로 보냅니다. 차창의 한 모퉁이에 모차를 배합할 수 있도록 준비된 공간이 있습니다. 사각형으로 낮게 담을 치고 바닥엔 타일을 깔아서 섞을 때 이물질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합니다. 한지역 같은 차밭에서 같은 날 생산된 차라도 상자마다 약간씩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단주를 생산해보면 심지어 바로 엽의 한그루 한그루의 차맛 차이도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생산하기 전에 제품의 균일한 맛을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상자를 열어서 다시 골고루 섞어 주어야 합니다. 더구나 다른 지역의 차들을 섞어서 병배를 할 때에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확한 비율을 맞추어 골고루 분배하고 여러 번 뒤집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보통 두 세군데 지역의 차들을 병배 하는데, 병배 지역이 많을수록 더욱 어렵습니다.

 

참고로 오운산의 2016년엔 멍하이의 6개 지역 고수차를 병배 하였는데, 올해는 생산량의 감소로 인한 가격 폭등과 지역별 맛의 차이가 큰 편이라서 좋은 원료를 확보하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이산 저산의 차들을 상자마다 일일이 시음하고 조금씩 구하다보니 2017은 모두 10개 지역의 고수차 원료가 들어갔습니다.

 

모두 멍하이 지역이기는 하지만 작년과 같은 차밭의 원료는 두 곳에 불과하고 8개 지역은 모두 다른 차밭의 고수차입니다. 보이차 제작에서 다른 과정은 대부분 기계의 힘을 빌려서 생산할 수 있지만 소량의 고수차 병배 과정만큼은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감각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최근엔 대형 차창에서 대량의 모료를 섞을 때는 기계를 이용하기도 한답니다.)

 

먼저 널찍한 공간에 병배 할 모료중에서 양이 가장 많은 모료를 맨 아래에 일정한 두께로 넓게 펼쳐줍니다. 그런 다음 열십자로 사람이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듭니다. 그리고 네 부분으로 나눠진 공간에 양이 적은 순서대로 정확히 사등분을 하여 골고루 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로 많은 모료를 맨 위에 사등분하여 덮어 줍니다.

 

그리고 한부분 씩 삽으로 세 번정도 뒤집어 줍니다. 일차, 이차, 삼차 뒤집기를 한 다음 다시 상자에 십키로그람 씩 담으면 병배가 완료됩니다. 간단하게 병배 하는 과정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사실은 괭장히 고단한 작업입니다. 특히 뒤집기를 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찻잎 가루들이 날리기 때문에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됩니다.

 

요즘 미세먼지의 심각성이 나날이 보도되고 있는데, 찻잎 가루라고해서 먼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주로 찻잎에 붙어있는 백호 즉 하얀 털들이 뒤집는 과정에서 탈락하여 날리는 것입니다. 모차를 분배하는 과정에서도 찻잎 가루들이 날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주로 병배 과정만 감독하고 뒤집기를 할 때는 직원들에게 꼭 마스크를 하라고 당부하고는 밖으로 도망가는 편입니다만 중간 중간에 한번씩 돌아와 보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리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건강에 해롭다고 몇 번이나 당부해도 무작정 괜찮다며 잘 듣지를 않습니다.

 

특히 오운산은 다른 업체들처럼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병배하기로 직원들끼리 소문이 나 있어서 때론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병배가 있는 날 저녁엔 꼭 비계살이 많은 삼겹살을 구해서 다같이 구워먹습니다. 옛날에 광부들이 진폐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많이 먹었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기침을 하면 새까만 가래가 솓아져 나옵니다. 겯에서 감독만 하는 제가 이정도인데 직원들은 어떨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고 맛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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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26 - 차농들의 진화 -

 

오늘은 저희가 차를 생산 하면서 매일 같이 만나고 있는 차농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해마다 봄철이면 전 세계에서 보이차업을 하는 분들 또는 마니아 분들이 윈난성으로 몰려듭니다.

 

윈난성에서도 시솽반나 멍하이는 노반장을 비롯한 유명 고수차 산지가 집중되어 있고 전통적 보이차 산지인 이무 지역 또한 가까이에 있어서 보이차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엔 날씨나 온도가 보이숙차의 발효에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알려지면서 린창이나, 푸얼 등에서도 원료를 멍하이로 옮겨와 발효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이차를 압병하는 차창도 빠공리(8키로)라고 부르는 멍하이 도심에서 8km 거리에 있는 지역에 공단 형태로 집중되어 있고, 각종 모차 보관 창고도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모차 시장은 기존의 멍하이 시내에서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신하이화위엔(鑫海花園), 하오위차청(浩宇), 찌아밍차후이(佳茗), 티엔푸샹차예시창(天福祥), 쓰하이차청(四海)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600여 곳에서 최근에 3000여 곳으로 증가하였는데 지금 짓고 있는 가게까지 합하면 조만간 5000여 곳을 상회할 것 같습니다. 멍하이가 보이차 생산 전진기지에서 점차 적으로 수도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차 가게가 갑자기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물론 보이차 음용 인구의 증가에 따른 산업의 발달에 기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현제 멍하이에 있는 가게의 80%정도는 차농들이 오픈한 가게입니다. 고수차 가격의 폭등으로 인하여 차농들에게 여유 자금이 생기고, 옛날엔 큰 차창에 생엽을 납품하던 단계에서 초제소를 짓고 가공하여 모차를 납품하는 단계로 발전하더니 지금은 시내에 가게를 오픈하여 직접 손님을 상대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입니다. 차밭을 가지고 있는 많은 차농의 자손들이 이미 멍하이에 가게를 오픈했거나 준비 중에 있습니다.

 

더러는 일찍이 외지에 나가서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찻값이 오르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분들도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부모들이 가게를 차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아가 아직은 소수지만 직접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차박람회 등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농들의 가장 큰 경쟁력은 역시 원료의 자가 조달일 것입니다. 자기 차밭에서 자기가 수확하여 자신이 가공한 원료이기 때문에 원가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잎이나 모차를 수매하여 생산하는 저희와 비교하면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 하게도 차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늘 차밭 가까이 자라왔고 일상처럼 차를 생산해 왔으면서도 차의 가치가 오늘날 이렇게 폭등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집중해서 차를 마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찻값이 오르니 생계형으로 차업을 시작한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차에 관한 역사나 맛의 철학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무지한 편입니다.

 

참외 밭 주인이 참외 맛을 잘 알까요?

참외 장사가 잘 알까요?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참외 사먹는 사람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차도 많이 집중해서 마셔본 사람이 맛을 가장 잘 압니다.

 

괜히 죄 없는 차농들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농사꾼이라고 평생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지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좋은 자산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정말 좋은 차 만들어서 차 업계에 우뚝 서는 차농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바도 있습니다. 다만 잠 안 오는 날 구름의 남쪽 한편에서 생각하니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운 건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모르거나 알고도 내팽개치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농사꾼은 농사 열심히 잘 짓고, 장사꾼은 양심껏 장사하고, 정치꾼들은 정치... 아이고 마 잘 쫌하고, 차인들은 좋은 차 잘 구분해서 마셔주면 좋은 세상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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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공장에서 살청하는 모습

 

멍하이 일기 22 살청(殺靑가마솥에서 찻잎 덖기)

 

위조 즉 시들리기가 끝난 찻잎은 가마솥에 넣어서 덖어 주는데 이 작업을 살청이라고 부릅니다. 푸름을 죽인다? 어감에서 오는 섬뜩함이 약간 거슬리지만 멍하이에서는 현제 거의 고착화된 용어입니다. 그런데 살청을 끝내도 푸름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습니다.

 

살청 시간이나 가마솥의 온도에 따라 색깔은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비교적 고온이라고 할 수 있는 200도에서 덖으면 녹색이 두드러지고 100도 정도에서 덖으면 연황색 계통이 됩니다. 녹차 같은 경우에는 300도 전후의 가마솥에서 여러 번 덖기 때문에 그야말로 녹차가 되고, 살청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점점 산화되어 검은색 계통으로 변합니다. 살청 역시 생산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오운산은 전통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느린 살청법을 택하고 있는데 솥의 온도는 100 ~ 150도 정도로 맞추고 40분가량 덖기를 계속합니다. 처음엔 약간 고온으로 시작하고 점점 솥의 온도를 낮추어 줍니다. 보통 생태차는 30분 정도로 끝내고 고수차는 좀 더 시간을 길게 해줍니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찻잎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시간과 온도를 조절합니다.

 

어떤 곳은 솥 온도를 높여 10분 만에 살청을 끝내는 곳도 있고 또 다른 곳은 솥 온도를 80도 이하로 조절하여 아주 느리게 살청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느 방법이 꼭 좋다고 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에 맞는 차를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철학 없이 그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면 저는 멀리 하겠습니다. 그 차에 맞는 최선의 가공법을 연구하고 원료의 가치를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옳은 일일 것입니다.

 

살청 기계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는데 전기를 이용하는 것과 목재로 불을 지피고 기계로 솥을 돌리는 방식의 반자동씩도 있습니다. 고수차는 아직도 대부분 손으로 직접 덖는 경우가 많고 소수차들은 점점 기계를 이용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직적 살청한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미숙한 사람이 대충하는 것 보다는 기계 살청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손을 구해서 살청을 하자면 고수차는 1kg80위안 소수차는 30위안 정도의 인품이 듭니다. 그런데 어떤 차는 1kg30위안도 안 되는 것들도 시장에 있습니다. 원료비용, 채엽비용, 살청비용, 그 외 기타 가공비용을 합하면 일반적인 차농이 생산한 차는 아무리 저렴하게 팔아도 70원 이하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무 저렴한 차는 대형차창에서 대량 제배하여 기계 가공한 차이거나 문제가 있는 차일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살청의 주요 목적은 차를 익히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들리기를 통해 어느 정도 줄어든 찻잎속의 수분을 더욱 줄여주고 유념 즉 비비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찻잎을 솥에 넣고 약간 빠르게 뒤집기를 하는데 싱그러운 풋내가 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풋내가 가시면서 향긋한 단내가 올라오고 마지막엔 약간 고소한 향기가 납니다. 경험이 쌓이다보면 덖는 과정에서도 고수차인지 소수차인지 대충 구분이 가능합니다. 고수차는 비교적 무겁게 느껴지고 소수차는 가볍습니다.

 

차농들은 흔히 모차를 손으로 들어보고 차를 구분하곤 하는데 원시적이지만 비교적 정확합니다. 저도 매번 한손으로 들어서 무개를 가늠해보곤 하는데 확실히 고수차가 조금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차농들처럼 맛도 안보고 차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다만 참고할 뿐이지요! 여러분들도 기회가 닿으면 한번 시험해보세요 아주 신기합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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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이 일기 17 - 윈난 차여행 일곱째날 이무 가는 길 -

 

운남에 내리는 비는 맑습니다.

찻잎을 스친 빗방울이 원시림 속에 물길을 만들어

란창강을 돌아 들녘을 적시고

강아지 . 도야지 . 병아리 더불어 사람이 삽니다.

이무고진 소학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전하고

주인모를 짐승들이 한가로이

아스팔트를 산책합니다.

때 되면 돌아가 주인이 남긴 음식을 먹고

때 되면 몸을 남겨 주인을 먹입니다.

 

언젠가 이무를 다녀오면서 남긴 글입니다. 빠름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갑자기 느림 속으로 들어가면 잠시 답답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 중국을 다닐 때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 나라의 정체성에 많이 혼돈스러웠습니다.

 

신용을 담보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몇 번 손님들과의 약속 때문에 애를 태운 적이 있습니다. 느리지만 결국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들의 행동 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점점 나도 모르게 느긋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은 피고지고 또 열매를 맺습니다. 차산을 다니며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겨버리고 때론 훌훌 날려버리고 싶은 갈망들을 옮겨 보았습니다.

 

징홍은 멍하이보다는 약간 후덥지근합니다. 징홍은 평균해발500m 멍하이는1200m 정도 되는데 고도의 차이로 느껴지는 기온의 차이가 제법 큽니다. 멍하이도 사월이 되면 차산은 그래도 시원한편이지만 시내는 아열대 특유의 다습함이 있습니다. 일정의 편의를 위해 멍하이에서 징홍의 란창강변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기고 다음날 아침 이무로 출발합니다. 란창강 좌우로 분포해 있는 고육대차산과 신육대차산을 가로지르며 이무까지 약 세 시간 곳곳에 식물왕국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멍하이에서 이무 가는 길 중간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열대식물원이 있습니다.

 

연 평균기온이 21도 전후이고 강수량이 풍부한 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아열대림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900여 핵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4000여종의 희귀식물들이 재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일정이 빠듯하여 간단히 기념 촬영만 하고 지나갔지만 북회귀선상의 푸른 보석지대로 알려진 이곳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꼭 한번 들러볼만합니다. 길을 따라 사람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산비탈엔 주로 바나나와 고무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청나라 때 이무의 차가 황실에 진상품(進上品)으로 지정되었던 시절에 이곳은 아마도 전부 차밭이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이후 관리를 하지 않아 황패해졌던 차밭은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경제작물로 전환되었습니다. 비타민 공급원으로서 차가 생명과 직결된 티베트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먹을거리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에 차는 그저 사치품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차밭을 찾아 오지로 들어가면 새까맣게 거스른 주전자를 숯불에서 꺼내어 주변의 빈 그릇에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따라주는 토착민들의 정겨운 눈을 만나곤 합니다.

 

징홍에서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이무 초입입니다. 여기서부터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을 삼십분을 올라가면 이무향(易武鄕)이라는 대문을 만납니다. 잠시 내려서 기념 촬영을 합니다. 세월의 격랑속에 이무 길가의 고차수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직도 남은 이무지역 고차수를 보려면 몇 시간씩 산을 올라야합니다. 몇십 년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는 전부 고차수 밭이었을 겁니다.

 

보이차의 전성기로 알려진 청나라 시절에 이무 지역 보이차 생산량이 지금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 비례로 따져보면 가히 엄청난 량이 생산 소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옛날의 차창 흔적이 그대로 보호되고 있는 이무고진으로 이동하여 아직도 남아있는 복원창, 동흥호, 차순호 등의 보이명가를 둘러봅니다. 지금은 유력 차창의 홍보 공간으로 내지는 탐방객들에게 기념품 정도로 몇 편씩 생산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 몇 그루 남은 이무의 고차수들과 쓰러져 가는 이무 고택을 바라보며 잠시 세월의 무상함도 함께 느낍니다.

 

저희의 이무기지에 들러서 올해 생산된 이무차들을 몇 가지 시음합니다. 마침 부허당(薄荷塘)에서 가져온 고수차 생잎을 말리고 있습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1kg60만원입니다. 모차로 제작하면 1kg300만원 가까이 되는데 작년보다 50%정도 오른 가격입니다. 올해 이무에서 생산되는 차중에서 만송(曼松)차와 더불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궁금해 해서 맛이나 보려고 해마다 조금씩 구하는데 그것도 부담스러운 가격입니다. 올해도 예상과 달리 모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아직 덜 알려진 지역까지 모차상들이 몰리면서 좋은 원료를 좋은 가격에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하필 제가 작년에 남몰래 점찍어 놓은 지역들이 집중적으로 오르고 있는데 좋은 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일까요!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도 정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출시 가격을 생각하건데 자꾸만 치솟고 있는 가격이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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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삼년째 경매산 근처의 경익차창에서 손님들 환영식을 했습니다. 2015년 한국 손님들 40여분을 모시고 차산 여행을 할 때 위잉빙의 남편인 옌종의 제의로 우연찮게 이루어진 행사입니다. 태족, 하늬족, 포랑족, 라후족, 등의 소수민족들이 자발적으로 각 민족의 고유의상을 갖춰 입고 같이 즐기며 노는 한마당을 여는 것입니다.

 

작년엔 프랑스, 스페인, 미국, 등에서 오신 손님까지 합하여 10여개 민족이 함께하는 자리가 연출되었습니다. 모두들 전문적인 배우가 아니라서 서툴고 진행 또한 허술하지만 다함께 즐긴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해가 더해갈수록 조금은 세련되게 연출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만 아직은 춤도 노래도 그야말로 동네가수입니다. 때론 춤추는 중간에 음악이 꺼져버리고 노래를 하다가 부끄러워서 웃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함께하기에 즐겁습니다.

 

매년 시솽반나 최대의 축제날인 포쉐이지에(물뿌리기 축제) 415일을 전후하여 거행하였는데 올해는 한국 손님의 일정에 맞추어 조금 빨리 하게 되었습니다. 경매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대문 입구에 오색 찬란한 복장의 소수민족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들이 각종 악기를 요란하게 울리며 저희를 맞이해 줍니다. 저는 몇 번 경험하는 일이라 웃으며 들어갑니다만 다른 분들은 웬일인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리번두리번 우쭐우쭐 입구로 들어갑니다.

 

널찍한 차창 마당에 저녁 햇살이 비취고 노동에 지치고 그을린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하나 둘 전통 의상을 차려입고 맑고 밝게 웃으며 마당을 돌고 춤추며 노래합니다. 한국 손님들도 답사로 마당으로 나와서 한판 놀아보라고 합니다. 마침 저희 오운산 한국 대리상인 모여사님의 민요 실력이 가수 못지않다고 소문이 자자한지라 박수로 모셨습니다. 밀양아리랑으로부터 시작한 답가가 박수 속에 그칠 줄 모릅니다...마지막엔 마당 중앙에 커다란 화분에 심은 차나무를 세워 놓고 손에손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가며 라후족의 단결댄싱을 추어봅니다. 댄싱 스텝을 밟으며 빙빙도는 춤인데 처음엔 자꾸만 스텝이 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익숙해집니다.

 

매년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해주는 옌종에게 뭐라 감사 표시를 하고 싶은데 같이 노는데 무슨 비용이 필요하냐는 한마디로 딱 자릅니다. 내년에도 많은 외국인 친구들 모셔오면 그걸로 충분하답니다. 다음날은 저희 오두막으로 먼 길 오신 손님들을 모셨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붕에 중국 국기와 나란히 펄럭이는 태극기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지릅니다. ‘사드문제 때문에 이번 여행 내내 말씀들은 안하셔도 불편한 심정이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다행이 우려했던 상황들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곳의 대부분인 소수민족들은 대도시와는 달리 정치적 현실에 무관심한 편입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대도시 사람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치적 문제를 거론하지 않습니다. 혹여 사드문제 등을 거론하더라도 당당히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면 대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제 논리의 주체는 항상 사람입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입니다. 나와는 크게 상관도 없는 일시적 정세에 일희일비 하고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저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가 원하는 정직한 차 열심히 만들어 국적 불문하고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과 향기로운 마음을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아직도 완성이 덜된 초제소 마당에 둥근 탁자 몇 개 놓고 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며칠간 입맛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 억지로 드시느라 고생하신 것 같아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상을 차렸는데 너무너무 잘 드십니다. 다락방차모임 회장 사모님은 망고를 얼마나 열심히 먹었던지 입 주위까지 노랐습니다...중국이 음식 천국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윈난의 요리는 향신료가 비교적 강한 편이라서 여간해서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한지 삼년이 되어 가는 저도 소수민족의 식사 초대에 기꺼이 응하지만 아직도 불편한건 사실입니다. 아무리 적응하려해도 한국 사람인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가게 냉장고에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두고 식사 때마다 조금씩 꺼내먹고 있습니다.

 

마을 주위에 있는 저희의 생태 차밭에서 채엽해서 그늘에서 적당히 말린 찻잎들로 각자 돌아가면서 살청(殺靑) 체험을 합니다. 비비기를 해서 널따란 광주리에 널어두고 맑고도 깨끗한 윈난 햇살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찻잎들의 비틀기를 지긋이 바라봅니다.

Posted by 石愚(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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