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의 세계에서 특히 남성들이 빠진다고 하는 숯불 다법을 공개하였다. 오모테센케류 부산 적조암 최미경 선생의 동작 하나하나를 상세히 보여준다. 炭斗(탄두)와 灰器(회기)를 옮기고, 고리를 솥에 걸어 올리는 동작. 솥을 오덕에 올리고, 향합 배견의 인사까지 33년 동안 차를 수행으로 여긴 최미경 선생의 숯피우는 다법이다.
중국으로 입국하면서 2주간 격리되는 동안 페이스북을 자주 보고 사흘에 한 번 정도 글을 올렸더니 갑자기 친구 요청이 쇄도합니다. 차에 관심이 있는 분들 그리고 환경과 예술 방면에 인문학적 식견이 있는 분들 위주로만 요청을 수락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신청하다 보니 혹여 저를 아는 분들의 신청도 빠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유명 인사도 아니고 그저 차 만드는 사람일 뿐인데 귀한 분들의 친구 신청을 거절하기가 때론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내용으로 도배를 하거나 야한 사진을 올려 그렇잖아도 쓸쓸한 밤을 망상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은 바로 삭제하고 있습니다..^^
댓글과 메신저로도 여러분들이 소식을 전하는데, 답장을 안 하기도 그렇고 일하는 틈틈이 답장을 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군요?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면 그냥 읽었다는 표시로 하트 정도만 남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쭙잖은 글 그냥 읽어만 주셔도 감사한 일입니다. 차업에 열중하다가 틈틈이 다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박홍관 선생님이 운영하는 '석우연담'에 2017년 3월부터 '멍하이 일기'라는 코너를 만들어 연재하면서부터입니다. 윈난성 멍하이에 한국인 명의의 '석가명차차업유한공사'를 설립하고 거주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보이차의 생산과정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는 차원이었습니다.
그 후 석가명차 오운산 이름의 밴드와 블로그 그리고 유튜브를 개설하였고 작년부터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도 개통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건 물론 저희 업체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은 얼마 전에 열 편에 걸쳐 올렸던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처럼 현재 다소 왜곡되고 있는 차문화를 개선하고 맑고 밝은 차세상을 여는데 일조하고픈 마음에서입니다. 이십여 년 차업을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차로 인연하여 삶을 꾸릴 수 있었기에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소명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에 제 글의 조회 수가 높다 보니 각종 개인적인 질문을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보이차에 관한 질문도 많지만 의외로 저 개인의 이력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군요. 일일이 답변드리기도 그렇고 이 지면을 빌어 간단하게 제가 살아온 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1965년생 56세입니다.
저의 나이는 회사 기밀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는데, 여러분들의 거듭된 질문에 굳이 밝히지 않을 이유도 없어서 그냥 알려드립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8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홀로되신 어머니 곁에서 8형제와 더불어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4년 전액 장학금이 아니면 대학을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공부 실력 또한 고만고만했었기에 이대학 저대학 기웃거리다가 결국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단기사병으로 복무했습니다. 무슨 특권으로 일명 방위를 간 것은 아니고, 지역 방위라고 그 지역 출신은 근처에 있었던 군부대에 자동 징집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짧은 군 생활을 마치고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주로 산으로 다녔기에 절집과 인연이 많은 편입니다. 한때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이끌려 좇아다닌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뜬구름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7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이십 대 말에 지금은 목사를 하고 있는 친구의 권유로 '부산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습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글재주를 눈여겨 봐준 친구가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번번이 낙방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더니 지원서까지 가지고 와서 협박? 하길래 할 수없이 다시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울산대학교' 국문과로 편입하여 최종학력은 국문학사입니다.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던 이유는 단 하나 가끔씩 마음속에서 뜬금없이 솟아나는 콤플렉스를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94년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민들레'라는 도서대여점이었습니다. 가진 건 책밖에 없었든 시절 그것도 남들은 잘 읽지도 않는 고리타분한 철학 서적들을 통도사 터미널 근처의 작은 공간에 쌓아두고 그렇게 또 굴곡의 한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1996년 울산 언양의 작천정이란 곳에 '가시리잇고' 라는 전통찻집 겸 식당을 개업했는데, 요즘 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1999년 더 이상 돈벌이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지리산 자락의 토굴에 들어가 영어 공부나 하며 2년 정도 잘 놀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 운명처럼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고 '석가명차'를 창업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중국의 윈난성 멍하이에 '오운산'이란 상표의 보이차 전문 회사를 창업하고 지금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간단한 소개를 마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나 다소 이상한 댓글을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잡놈이기에 곤란한 질문이나 거창한 물음에는 답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올린 글에 500명이 넘는 분들이 하트 표시를 해 주셨는데, 일면식도 없지만 멀리서 응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그동안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현재 보이차 시장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제 나름의 시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품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동안의 글들을 마감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 이외에도 농약과 비료의 문제, 아플로톡신을 비롯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의 검출 문제 등 여러가지 고민할 부분이 있습니다만 차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품평이라고 하면 흔히 각종 차 관련 행사에서 업계의 저명한? 분들을 모셔서 출품된 차들을 심사하고 시상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되는 품평은 행사 차원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시상 또한 그러한 방향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도 중국의 이런저런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여러번 참여를 권유받았고 시상을 거래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심평을 통해 우수한 차를 선택하고 시상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중국의 차 가게를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부터 장식품처럼 진열되어 있는 국적불명의 상패를 보다보면 이런 시상에 연연하지 말고 제품에 좀 더 신경 쓰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대로 시설을 갖춘 실험실에서 전문 연구원들이 엄격한 기준 속에서 하는 품평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차인들이 차를 나누며 심심풀이?로 하는 품평도 있습니다. 행사 차원의 품평은 주최 측의 의도 등 다양한 품평 기준에 따라 선택지 또한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의 경우 어쩌면 일반인들이 가볍게 하는 품평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차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약이 아니기에 효능적 측면보다는 마시는 사람의 입맛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소비자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주는 차라야 소비되고 계속해서 생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소비자들의 기호만 좇아 가는 품평과 그렇게 선택된 상품이 꼭 최고의 제품이라 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기호는 시대적 개인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대중은 때로 일시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중우(衆愚) 적인 성향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때 대중의 열열한 호평 속에 사랑을 받았던 것들이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고 한순간에 내팽개치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차에 있어서 좋은 품평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무엇보다 본질에 충실한 품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는 차가 가진 본래의 맛을 가장 잘 살린 차가 좋은 차이고 그러한 맛을 구현한 차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좋은 품평이 아닐까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차는 차나무에서 딴 이파리를 가공해서 만든 것입니다. 우려서 마시면 향기로우며 입안에 머금었을 때 감미롭고, 마시고 나면 속이 편안하며 여운이 오래도록 몸을 감싸는 느낌이 있는 차, 수시로 다시 생각나는 것이 좋은 차라고 생각합니다.
차를 마시면 곧바로 그러한 느낌이 있는 차도 있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서 서서히 느껴지는 차도 있습니다. 그래서 품평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저는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SNS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시음평을 보면 때론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보기에 목적을 가진 시음평과 순수한 시음평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데 일반 소비자들이 판단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친 미사여구로 마치 장생불사의 영약처럼 묘사한 차, 그래봐야 쌀값보다 비싼데 가성비만 강조한 차,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라며 터무니없이 비싼 차, 당장 구입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차, 기회는 찬스이니 왕창 사서 쟁여두어야 한다는 차, 지금은 맛이 없으나 훗날에 틀림없이 황홀한 맛으로 바뀔 것이라는 차, 몇 달만 마시면 날씬해지고 예쁘진다는 차 등등 ...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예들을 적어 봤는데 저는 오히려 이렇게 소개하는 차들은 빼고 구입하시면 좀 더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자신이 취급하는 차만 최고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만든 차는 무조건 아니라는 사람이 판매하는 차는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이던 집착하면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습니다. 열정의 오류라고 할까요?
지나친 집중은 오히려 다른 세계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가끔 제가 만든 차에 대하여 설명하다 보면 문득 이야기가 점점 부풀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최소한 다른 사람이 만든 차에 대해서는 쉽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들면 그냥 입을 다뭅니다. 좋은 차를 생산하는 고통을 알기에 한두번의 간단한 시음으로 타인이 정성껏 만든 차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차를 만드는 동업자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쓴 10편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전화로 댓글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제 나름의 생각을 적었을 뿐 제가 생각하는 진실이 모두의 진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여 제 글로 인해 불편한 분들이 있었다면 사과의 말씀 또한 올립니다. 좀 더 맑고 투명한 보이차 세계를 위한 제 나름의 제안이라 여겨주시고 넓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이차를 수익을 목적으로 구매하고 저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는 유산상속의 일환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거금을 오운산 차에 투자할 테니 방문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늘 자금이 부족하고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는 자신을 돌아보곤 합니다.
제가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차는 마시는 것입니다. 보이차도 세상의 수많은 차들 중에 하나이고 마시는 음료일 뿐입니다. 최근엔 보이 노차 열풍이 불면서 기타 차들도 노차의 가치가 대두되고 있습니다만 모든 차는 원래 그해에 만들어 그해에 마시던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만들어서 손자가 마신다는 씩의 말 또한 없었습니다. 노차의 가치를 홍보하기 위해 근년에 조작된 수사일 뿐입니다.
90년대 홍콩의 창고에서 노차가 발견되어 대만 한국 등으로 소개되고 최근엔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되면서 노차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하였습니다. 보이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원래 보이차는 저장을 목적으로 생산된 차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홍콩으로 보이차가 소개되면서 현지의 음용 습관에 따라 차를 묵혀서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게 보관되었던 일부의 차가 세대를 건너뛰면서 희소성을 가미한 신비한 맛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노차라는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개념의 형성과 동시에 오로지 투자를 목적으로 차를 무조건 묵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차테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보이차 시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광저우 팡춘에는 수많은 보이차 가게들이 난립하여 저마다 '차테크'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주식처럼 매일매일 보이차 시세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고 주로 인지도가 높은 대형차창의 제품 위주로 거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이러한 흐름을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크게 보면 시장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좋은 차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저희도 그동안 차업을 하면서 소장하고 있던 일부 차들이 폭등하여 매년 봄 좋은 원료를 확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시 차는 차일뿐입니다.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만들었고 마셔서 없어지는 것이 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시장에서 저장되고 있는 대부분의 차들은 박스를 뜯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낙서가 있으면 10%, 박스를 뜯었으면 20%, 통을 열었으면 30%, 포장까지 열어보았으면 정상 가격의 절반값도 받을 수 없으니 고가의 차들은 감히 열어볼 생각도 않고 신줏단지 모시듯 보관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좋은 차는 품질과 상관없이 가격이 빨리 올라가는 차라는 인식이 팽배해져가고 있습니다. 특정 세력들이 움직여 차가 출시되기도 전에 선구매로 물량이 없어지고 재선구매, 재재선구매까지 이어지고 결국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상인은 도망가거나 엄청난 손실을 보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차라는 개념의 형성이 '차테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긴 했으나 원래의 목적인 햇차를 묵혀서 새로운 맛으로 재 탄생시킨다는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랩니다. 오로지 자본만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을 보고 있노라면 저는 잠시 멍합니다.
'當年好茶 經年新茶'(그해에 만들어 그해에 맛있게 마실수 있는 차,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는 차) 라는 오운산의 생산이념을 새긴 차를 어렵게 생산하여 어지러운 시장의 한복판에 세워두고 있는 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암울할수록 희망의 빛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세상은 넓고 보이차 시장 또한 성장하고 있습니다. 좋은 차를 생산하고자 노력하는 저 같은 바보도 많습니다. 앞으로는 꼭 보이차가 아니더라도 좋은 차를 선택하고 항상 가까이 두고 마시는 진정한 차인이 점점 늘어났으면 합니다.
여유가 있는 분이 넉넉히 차를 구입하여 이웃과도 나누고 일평생 마시고도 남아서 훗날 자손에게 경제적 도움까지 될 수 있는 차라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가 가진 정신과 목적을 망각한 이름뿐인 차인들의 지나친 투기는 결국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가격의 등락만 지켜보는 차가 아니라 마셔서 없어지고 여운은 입가에 가슴에 남는 차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싼 차! 유명한 차! 오래된 차! 희소한 차! 한번 마시면 평생 잊기 어려운 차! 보통 사람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차! 현재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여러가지 가치들을 종합해보면 역시 노차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이차의 불편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노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보이노차는 현재 차 시장의 정점에 있는 차이고 수많은 보이차 애호가들이 언젠가 한 번쯤은 마셔볼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96년부터 차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노차를 판매한 적이 없습니다.
칠팔십 년대에 생산되었다는 비교적 저렴한 흑차류 차들은 일부 취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한편에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보이 노차들은 감히 취급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애초에 그만한 자본을 움직일 재력이 없었고 노차 탄생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홍콩과 대만 쪽의 인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천년 초 인연 따라 몇 번 마셔본 것이 전부인 노차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차는 많이 마셔본 사람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차업을 시작한 후 여러 사람들로부터 노차를 문의하는 연락을 받았고 먼저 거금을 줄 테니 정품 노차를 구해달라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매번 정중히 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줄 곳 여러 대형차창의 한국총판을 해왔기에 신차 위주로 취급해왔습니다. 솔직히 저의 경험과 실력으로는 노차의 진위를 정확히 판별할 능력이 안된다는 자각에서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정품노차를 가지고 있기로 이름난 분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지금은 구경하기조차도 힘든 차인 홍인을 마실 기회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정품 침향의 놀라운 가치를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문화든 그 문화의 정점은 존재하고 정점의 문화를 보존하며 꽃피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누릴 수 없는 문화 이기에 무조건적으로 터부시하고 도외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금전의 유무를 떠나 정점은 정점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정점의 문화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일부 계층의 오락거리로 전락하거나 너희는 마셔봤냐? 씩의 특권의식을 고취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차는 차, 백년 천년이 지나도 역시 차일뿐인데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호도 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또 한가지 제가 노차를 취급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창고에서 갑자기 출현한 수톤 내지는 수십톤의 노차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입니다. 호급 인급 차들은 애초부터 량이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들을 정확히 감정할 수 있는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노차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기회를 틈타 오로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름뿐인 준노차들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었을 수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차를 익혀서 먹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몇년도 아니고 수십년동안 정체를 감추고 있던 차가 비슷한 시기 한꺼번에 많은 량이 시장에 솥아져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넘쳐나는 가짜 노차의 유해성과 수상한 유통 또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이십여 년 차업을 해왔지만 노차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제가 노차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자니 조심스럽습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정품 노차의 가치를 바르게 알리고 참다운 문화로 자리 잡게 하고자 노력하시는 분들도 한국에 계십니다. 혹여 그분들께 이 글이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저는 신차 위주의 차업을 해왔고 지금은 운남에서 직접 햇차를 생산하고 있는 입장이라 자칫 햇차를 생산하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노차를 비토 하는 글로 비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차가 이런저런 의문이 있는 차이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었습니다. 보이차가 처음 운남의 소수민족들이 마시던 차에서 청나라 때 중국 황실에 공납되던 차가되었습니다. 그리고 홍콩에서 노차의 가치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지금은 세계적인 명차가 되었습니다. 어떤 문명이던 문화든 그늘은 있게 마련입니다.
노차의 그늘이 깊은 것은 사실이나 노차 그 자체의 가치는 지금의 보이차 문화를 이끄는 거대한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