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불교 공부를 하면서 대승불교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 행에 대하여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팔만대장경으로 대표되는 불교의 교리는 공부할수록 신비롭고 절묘하다. 좌선이나 명상을 통해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성직자 또는 수행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깨달음의 경지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초기불교 시대에도 벽지불 독각 연각 등 부처님과 인연은 없었지만 홀로 공부하여 깨친 경우가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진리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나의 깨달음은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내가 있어서 세상 속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를 나라고 부를 따름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인연 따라 시시때때로 모든 것에 작용하고 있다. 열반 또한 고준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곧 열반이다. 심오한 진리란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도리 일 수 있다. 다만 태어나 지금까지 훈습된 현실 속에서 매 순간 어떻게 바름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지가 늘 과제로 남아 있다.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이 세계는 무상하며 '연기' 한다는 원리를 팔정도 수행을 통해 깨우치라고 한다. 괴로움의 발생 구조와 소멸 구조를 십이연기를 통해 바로 알고 '고집멸도' 사성제를 타파하여 고정 불변의 자아는 없음을 깨닫고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라고 한다. "생은 소멸했다. 청정한 수행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일을 끝마쳤다. 다시는 이와 같은 상태로 되지 않는다."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윤회의 사슬을 벗어난 이의 독백은 단호하다. 그러나 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현실과는 다소 괴리되어 있다. 깨달아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수행의 완성이란 말인가?
부처님은 깨달음을 증득한 이후에도 평생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르침의 핵심은 우선 고통스러운 세계를 떠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모든 사람이 깨달아서 열반에 이르고, 종국에 가서는 이 세계를 텅 비우는 것이 부처님의 목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될 수도 없겠고, 부처님의 깨달음이 그렇게 단순한 것도 아니겠지만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교리적으로 살펴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반면에 공의 원리와 진리를 강조한 반야부경전들과 화엄경 그리고 보살행을 강조한 법화경과 열반경 등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분명 한 단계 진화했다. 특히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실천을 강조한 육바라밀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대승 경전이 초기불교의 가르침과는 달라서 대승비불설이란 논쟁이 있지만 개인적 열반을 추구한 초기불교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르침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대승의 핵심 사상은 깨달음을 성취한 이후에도 열반에 들지 않고 보살행을 실천함으로써 이 땅에 불국토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비로자나불은 광명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는 삼라만상의 근본이요 실체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등의 보신으로 언제 어디서나 나투시고, 화신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직접 진리를 전한 분이 석가모니불이다.
불교를 공부하고 차를 생산하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비로자나의 원음인 "바이로차나"를 읊조리게 되었다. 바이로차나! 바이로차나! 차로서 부처님의 뜻을 펼쳐낼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차에 부처님의 자비를 담아 온갖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을까! 부처님의 이름을 차용한 다소 엉뚱한 생각이지만 차가 지닌 본성이 부처님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다선일여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주 스님은 진리를 구하는 이에게 "차나 한 잔"이라고 응답하지 않았을까!
2월 말쯤 다시 운남으로 가서 올해 봄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시원의 숲길을 걸으며 인연에 인연이 닿은 원시림 속 고차수를 만나고, 순수한 차농과 더불어 한잎 두잎 찻잎을 따서 가공하고 차 맛의 근원을 살필 것이다.
"悟雲山 운남의 차산을 깨닫다."
"仁做仁茶 참 사람이 만든 차, 참 사람이 마신다." 올해부터는 인(仁)이라는 글자 속에 있는 '참'한 의미를 끄집어 내고 싶다. 매사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으로 세운 오운산의 경영이념에 부끄럽지 않은 차를 만들고 싶다. 나아가 내가 만든 차를 마시는 모든 분들의 가슴속에 무량한 빛으로 존재하는 바이로차나불의 온기가 스며들기를 기원해 본다.
[아제생각]은 석가명차 오운산 최해철 대표가 전하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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