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골동보이차 경매 설명회를 마치고, 1950년대 람인철병 시음회가 있었다. 회비는 10만 원, 테이블 당 8명을 기준으로 25g을 사용하였다.
1인당 3g을 기준으로 차를 마실 때 8명이면 24g인데, 25g을 사용하였다. 보통은 21g을 넣고도 좋은 맛을 내기도 하는데, 이날 25g을 사용한 것은 보편적인 서비스를 넘어서는 것으로 주최 측의 배려로 볼 수 있다.
각각 독립된 네 곳의 찻자리에서 네 명의 팽주가 각각 차를 내었다. 차를 넣는 모습은 모두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차가 담겨있는 모습을 보고 산차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충스님과 함께한 찻자리에서는 내비의 조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차의 외형과 맛이 흔히 말하는 산차와는 전혀 달랐다.
골동보이차의 개념이 부족한 사람들의 말이 잘못 전달될까 우려되어 밝히지만, 이날 마신 차는 50년대 람인철병 산병(병차가 조각난 차)이 정확하다.
보관 상태가 VF인 람인철병 병차와는 조금 다르지만, 50년대 차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차를 내는 팽주의 성향에 따라서 차 맛은 다를 수 있다.끓인 물을 무쇠탕관에 넣고 다루는 시간 등은 매우 민감하며 일률적인 규격과 시간으로 다이야기할 수 없다.
차문화 전반을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경험하는 신기한 일이 하나 있다. 이는 어떤 차를 판매하는 곳이 없다고 많은 이들이 말을 하는데, 어디선가 그 차를 만나게 될 때다. 이런 경험을 올해 4월 구례 투다헌에서 가졌는데, 겉면의 포장 글씨를 통해 만든 이를 알게 되었다.
2012년 5월 2일 채엽이라는 글은 주인이 이날 채엽한 것으로 차를 만든 것이라는 표기다. 투다헌 사장님께 어떻게 이 차가 여기에 있냐고 했더니, “이 분 아세요?” 하면서 부산 차생원에서 몇 개 가져왔는데 좋은 차니까 선물할 테니 마셔보라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받아와서 잘 마시고 있던 중, 오늘 이 차를 만든 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통화인데, 요즘 어떻게 차를 만들고 있는지 물으니 답하기를 우리 차는 부산의 차생원에만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산청은 보성이나 하동보다 위도가 높기 때문에 차의 생산이 늦다.
그 지역의 차나무에 대한 가치와 보존 생장 환경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 차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차류의 보급이 확대되기를 희망하는 입장이지만, 그간 차류가 나오는 것이 드물었고 또 잘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곳도 다른 곳과 같이 어려운가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건실하게 잘 만들고 있고 판매망도 안전하다고 하니 너무나도 다행스럽고 더불어 기분도 좋은 하루였다. 차문화의 기록을 이어가면서 최근에 우리 차의 움직임을 볼 때 조금씩 건실하게 발전하고 있는 모양이 많이 보여 나름 희망을 가져본다.
7월 7일 일요일 석가명차에서 차도구 옥션 촬영을 마치고, 경주 아사가에 방문하였다. 2층 주인 차실에 들어서니 창가에 광동 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붉은 색 풍로가 부채와 함께 놓여있었다. 어! 여기서도 풍로를 사용하는가 싶었는데, 1층 직원이 숯불을 풍로에 넣었다. 아이들 손가락 굵기의 크기와 길이로 된 것이 일본 숯처럼 보였다. 무엇을 끓일 것인지 궁금했다.
아사가 관장님은 “요즘 백차를 끓여 마시는데 이것 한 번 맛보세요”라고 말했다. 관장님은 7g의 차를 넣고 물을 부은 후 뚜껑을 닫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숯에 붉은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후 탕관이 끓을 동안 최근 차계에서 일어나는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잠시 후 끓는 탕관을 기울여서 찻잔에 따라 주었는데, 코로 들어오는 약향과 탕색은 꼭 약을 끓여 마시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제까지 다양한 노백차를 보아왔고 시음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맛과 향이 독특한 것은 처음이었다. 1994년 만든 것을 2012년에 200g 단위로 포장하여 홍콩으로 수출한 것이라 한다.
백차를 마신 다음 1986년 7542를 마셨는데, 앞에 마신 차향이 깊어서 7542 맛이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김 관장은 조금 더 강한 맛이 나는 홍인 철병을 우렸다. 역시 차 맛을 잘 아는 프로의 생각과 행동이며 차 맛을 나누는 손님에 대한 배려로 여겨진다. 덕분에 세 종류의 차를 흥미롭게 마셨다.
지난 토요일 담양에 있는 오야재 차실을 방문했다. 제17회 국제차문화대전에서 청화백자를 이용한 차도구를 경덕진에서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행사를 마치고 방문 약속을 하였다.
경덕진 도자기로 한국 차시장에 들어온 청화백자 가운데 중국 차도구 마니아 층이 있는 오야재의 다양한 도구를 보고 싶기도 했다. 일반 경덕진 도자기의 다관과 유과원석을 유약으로 사용한 다관은 다르다는 점을 다관의 유약 표면을 보면서 설명해 준다.
차를 낼 때 오래된 무쇠 주전자를 사용하는데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했던 것이라 한다. 당신이 원래 차를 좋아하시기에 자사호도 오래도록 사용한 여러 가지 호를 볼 수 있었다. 차도구의 사용에서 신작이 아무리 좋아도 부모님이 사용했던 것을 대를 이어 사용할 때 작품의 수준을 논하지 않는다.
대를 이어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차인으로서 부러움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곧 명품이라는 말은 그 속에 여러 의미를 담지만 가장 큰 것은 오랜 세월 정확히 관리하며 사용해 온 사람에 대한 존경이 그 첫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내는 차는 취죽진여실에서 만든 노반장인데, 무쇠 주전자의 운치를 함께 느끼며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가뭄에 오는 단비인 오랜만의 빗줄기를 창밖으로 바라 보면서 여러 가지 보이 생차를 맛보았다.
제17회 국제차문화대전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중국차 관련 부스가 많이 참여하였다. 대부분 보이차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한쪽의 부스에 ‘육보차’라는 글이 눈에 확 띄었다.
흑차 중에서는 보이차 다음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용한 시간에 그 부스를 지나는데, 마침 이미선 선생이 팽주 자리에서 차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에는 최원화 선생님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오래간만인지라 합석을 하였는데 육보차라고 내어주는 차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더니 1960년대 차라고 한다. 60년대 흑차 대부분의 공통점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그 맛을 다시 보았는데, 귀한 차로 여겨졌다.
엽저를 살펴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맛과 향, 그리고 기운이 좋은 차였다. 이미선 선생은 이 차의 주인을 불러서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남당차방의 김태형 씨였다. 차의 맛과 성질을 두고 육보차 마니아 입장에서의 대담이 이루어지니 한층 즐거운 시간이었다.
차의 세계에서 검증된 노차를 중심으로 차회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노차를 중심으로’라고 하는 말 자체가 여러 어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차회를 기획할 때 ‘실제 50년대 차의 품질을 어떻게 보증하는가’ 하는 문제는 가장 먼저 검증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이번 홍인품감차회는 일점홍인과 대홍인이 중심이 된 차회로, 입맛을 깨우는 수준에서 80년대 8582를 마시면서 시작되었다.
이번 차회를 주관한 이루향서원 정진단 원장은 이미 한국에서 2018년 복원창 차회, 동경 차회 등 ‘골동보이차회’를 명가원 김경우 대표와 공동 개최한 바 있다. 이런 특별한 차회는 차회 문화라는 범주에서 보이차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필자는 차회 기록시, 반드시 한자리에서 인급 이상의 차를 두 가지 이상 마시는 자리에서만 ‘골동보이차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스스로 기준을 정한 바 있다. 오래된 차라고 해서 무조건 ‘골동보이차’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보이차의 마니아층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지만, 차를 마시는 기회 중에 이런 호사를 누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일점홍인과 대홍인을 차례로 마시면서 비교되는 점이 있었다면, 일점홍인을 마실 때 찻잔에 찌꺼기가 좀 보인 것은 차를 긴압 할 당시,긴압하기 전에 쌓인 찌꺼기가 들어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었다. 맛은 고미가 풍성하면서도 강한 맛이 이 차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음으로 마신 대홍인은 강한 쓴맛으로 일점홍인과 차별된 맛을 느낄 수 있고, 세 번째 차탕 이후부터 단침이 올라오는 강한 회감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단침이 어찌나 강한지 시간이 지날수록 입이 벌어지지 않게 될 만큼, 그 차의 매력은 아주 대단하였다.
차회 중간 다식을 먹는 시간에 사굉 경매 회사의 주 대표는 전기훈향기를 가져와서 녹기남을 올려 훈향하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향은 필자가 매우 관심이 많은 분야라, 훈향기를 코 가까이 바짝 가져와 흠향의 기회를 맘껏 누렸다. 두 번째, 세 번째 그 향을 즐기는 찰나의 아쉬움을 영원히 붙잡는다는 느낌으로 향을 즐긴 시간이었다.
사굉 경매 회사 周子 대표의 배려로, 오늘 경매에서 낙찰 받은 50년대 산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 순간 필자는 살짝 망설여졌다. 대홍인의 맛을 좀 더 간직하면서 충분히 오랫동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자 옆에 앉은 한수동 선생은 입안의 단맛이 무척 좋아서 다른 차를 마실 수 없다고 하며 50년대 산차를 마시지 않았다.
만약 일반적인 찻자리였다면, 어느 누구도 이어서 다른 차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50년대의 차를 경험할 좋은 기회이기에, 필자는 기록의 의무를 상기하며 하나하나 세세하게 음미하기로 했다. 50년대 산차를 마셔 보니, 흔히 70년대 보이산차라고 하는 차에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보이차의 경매회사 내에서 차를 마시고 즐기는 차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점에서도 반갑고, 주 대표의 통 큰 배려로 감상하는 차와 시음하는 차로 호사를 누린 기쁜 날이었다.
이번 차회에서 사용한 도구 가운데, 경매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의 수준 있는 일본 순금 히고 상감 무쇠탕관이 있었는데, 차를 내는 정진단 원장은 이 탕관을 사용하는 손맛이 매우 좋다며 흡족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