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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위(東魏) 534~550 시기의 동, 은, 자기 / 酒具 Set of wine vessels and tray

이번 중국 국보 전시품 중에서는 차와 관련된 것은 찾기 어려웠다. 325점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설명에는 술잔이지만 찻그릇과 병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이 6세기에 만들어진 9개가 한 세트인 주기(酒器)였다.
그 중 동으로 만든 접시, 은으로 만든 그릇, 동을 도금한 술병과 주전자가 각각 하나씩 이며 청자로 만든 잔이 다섯 개다.
은 그릇은 입이 넓고 배가 얕으며 발은 둥글다. 그릇의 바닥에 잎이 여섯 개인 연꽃 한송이를 부조했으며 바깥에는 구슬 무늬 두 줄을 장식했다. 도금한 동 주전자의 입은 평평하며 목이 가늘고 볼록한 배에 바닥은 둥글다. 뚜껑 위에는 진귀한 구슬 모양의 손잡이를 달았다. 청자 잔은 총 다섯 개로 약간 오므렸으며 배가 깊으며 두껍고 무겁다. 청회색을 띠며 발의 가운데는 안으로 약간 패였다.

8월26일 전시회 마지막날 오전에 일찍 갔다. 혹시 관계자 분께 찻잔과 술잔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난, 아무리 보아도 주기라고 하는 것은 찻잔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중국에서 이 문화재를 가지고 오는 일을 하신 분께 물어보니까 술잔이 아니라 찻잔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는데 설명에서 왜 주구(酒具)라고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제 수정 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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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은 추는 남자상 1]

풍휘묘, 28인의 악사와 무용수 죽어서도 풍악을 울린다. 머리에는 검은 복두를 썼고 몸에는 소매가 긴 붉은색 도포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검고 넓은 띠를 맸다. 검은 장화를 신었으며 몸은 옆으로 틀었다. 오른발은 반쯤 들고 왼발은 땅을 디뎠으며, 오른손은 앞으로 들고 왼손은 뒤로 돌렸다. 배와 땅을 엉덩이가 튀어나와 몸의 입체감을 표현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가 높으며 입은 약간 벌렸고 수염이 무성하다.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살짝 올린 채 춤에 심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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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은 추는 남자상 2]

검은 복두를 쓰고 몸에는 소매가 긴 도포를 입었다. 머리는 움츠리고 어깨는 들어올렸으며 오른 손바닥을 도포 밖으로 펴서 벌리고 발은 춤추는 듯 구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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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생을 부는 남자상]

날개가 약간 늘어뜨려진 검은 복두를 쓰고 붉은색 도포를 입었다. 실눈을 뜬 채 노생을 불고 있다. 노생은 한나라 이전부터 있었느며 원래 운남(雲南) 지방 소수 민족의 악기이다. 노생은 일반적으로 생이라고 하는 악기의 한가지로 한국의 생황에 해당한다. 생황은 신라시대 계유명아미타불삼존석상. 상원사 범종(725년)의 비천상애 조각되어있다.

오대(五代) 907~960년
오대 때의 묘(섬서성 빈현 저점향 전가취촌 풍휘묘)에서 무덤안으로 들어가는 양 쪽 옆으로 왼쪽 벽에 남자 14명, 오른 쪽 벽에 여자 14명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채색 부조 벽돌이다. 이 벽돌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춤을 추는 남자상 1]에서 보이는 모습으로는 얼굴이나 채형이 중국인이 아니다. 당시에 춤을 잘 추는 서역사람들을 수입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묘지에서 그런 유형의 사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권력층이나 귀족들은 자신이 필요한 말이나 사람등도 함께 수입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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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길백차 모수가 있는 주변의 경사도 높은 차 산지]

이번 차문화 답사는 중국측 여행사 대표인 전동해 씨가 동행하면서 가이드로 참석한 나의 역할이 약간 모호해 졌지만, 오히려 역할 분담이 이루어 지면서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한국인이 참가하는 중국 차문화 답사 프로그램이 현지 최고의 인맥을 동원하여 꼭 필요한 곳, 필요한 인물을 만나게 해 주고 그들로부터 전문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육우 묘가 있는 호주에 갔을 때 육우차문화연구회 회장단 일행의 접견과 만찬, 국가 차엽연구소인 육종원에서 그 분야 최고 전문가로 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든 것이다.

격에 맞는 만찬과 그에 따른 현지 차인 참석등은 일반적인 스케쥴이라기 보다는 차문화 답사에 보다 높은 격을 갖추고자 함이 엿보였다. 이번 여행은 국내에서 중국차 전문점인 람가헌의 재 오픈 기념으로 차문화 답사를 시행한 것이다. 차 전문점에서 차문화 답사를 시행하는 것은 고객에 대한 배려이며, 같이 공부하자라는 취지도 담겨 있다. 이러한 배려와 철저한 준비를 해준 주최측 람가헌을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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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0일 북경 골동시장인 판자위엔내 사진 갤러리

중국의 지나온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사진 갤러리이다. 이곳은 수만은 역사속의 사진을 걸어 놓고 판매하는 곳이다. 나도 사진을 좋아하기에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씻 구입하는 재미 또한 솔솔한 편이다. 처음엔 차 마시는 사진을 찾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차와 관련있는 사진을 한 장도 얻지 못했지만, 이곳은 내가 북경을 방문할 때 마다 꼭 들러는 곳이다.

중국돈으로 130위안에서 200위안(1위안 : 150원)으로 내 마음속 한 곳에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6번 째 방문하면서 이젠 주인과 안면이 있어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촬영해 주었다. 중국에서 차문화와 관련한 사진 찾는 것은 포기했지만, 지난 세월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찻자리에 관한 사진들을 정리하여 차문화사에서 바른 역사를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하는 것 같다.

2005. 03. 09 석우

판자웨이  중국골동시장  사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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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연구가 박정상(75세) 선생 별세, 찻그릇(다완)을 연구하며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선생은 최근 티벳 여행을 다녀오시고 고산병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8월1일 오후 11시55분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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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에서 보낸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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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상 선생은 2005년 부터 동양차도구연구소(http://www.teawell.org/)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일본 다완과 한국 찻그릇에 대한 역사적 탐구 활동이 깊었으며, 차문화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국내 문경 찻사발 공모전을 비롯한 여러 공모전에서 심사를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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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차(푸얼차 puer tea) 마시는 찻자리로 전국에 알려진 자연주의 마지막 찻자리는 예상된 일이었지만 수 많은 말과 풍문을 남기며 한국에서의 첫 번째 명차 순례(골동보이차 품다) 총 10회를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이른바 전설의 차들을 앞에 두고 펼쳐 졌던 행사였으며, 특히 운영해 나가는 가운데 주인의 배려와 큰 마음이 없었다면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가의 차를 할애하여 이루어졌던 행사였다. 이에 마지막 기록을 남겨 향후 아류의 차회와 그 운영의 범례로 삼고자 한다. (회비 10만원은 마시는 차의 원가에도 미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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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인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복원창)’ 6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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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접수 받은 찻자리다. 7시 10분전의 탁자 상태이다. 이 때 주인은 자리에 착석하면 바로 식사를할 수 있는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다.

지난 10개월 주인의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앞으로 전설로 남을 만한 이 시대의 귀한 찻자리로 기억되고 기록될 골동보이차의 원형(진품)을 감상하고 맛을 확인하고 음미 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회에서는 그동안 참석하신 분들에게 먼저 예약 우선권을 주고 선착순 17명까지 접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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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기 전에 영양식인 잣죽과 궁중떡볶이를 겸한 음식과 와인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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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오신 분이 혼마구로(참다랑어) 옆구리 살을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오후 7시 정각 17명 참석 예정자의 중 14명이 참석을 하였다. 먼저 찻자리에 앉아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자연주의 특유의 맛을 가진 궁중 떡복기와 잣죽이다. 셀러드와 멸치조림 등으로 식사하는 가운데 부산에서 한 분이 참석하셨다. 손에는 혼마구로(참다랑어) 옆구리살을 가지고 오셨다. 비록 간단한 식사이지만, 채소, 육류, 어류를 최고급으로 육질의 깊이를 음미하면서 앞으로 마실 차에 대한 기대도 크게 가질 수 있었다. 한 시간 뒤 나머지 두 분이 참석하여 17명 전원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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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져온 녹차 신양모첨 1등급을 마시기 위한 예열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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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예열하는 동작

맛의 원형을 탐구하고, 그에 관련한 시간을 가진 것에 감사한다. 이 자리로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 다른 곳에서 달근 매니아 들의 다른 차회가 생겨날 수 있으며 또 다른 새로운 차꾼들이 이루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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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모첨을 찻잔에 따른다, 옆에서 보조하는 분은 차를 우려내는 팽주와 부부이다.

주인은 시작에 앞서 '매달 개최해온 골동 보이차 품다의 찻 자리를 회향하고자 합니다. 해서 특별히 보이차의 왕으로 불려지는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를 품다하는 <回向의 찻 자리>라고'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오프닝 차로서 중국 녹차인 신양모첨을 마셨다.

녹차는 유리 숙우를 두개 사용하여 나누어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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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는 유리 숙우를 두개 사용하여 나누어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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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소타차(맛으로는 20년 정도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품성이 좋은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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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를 감상하는 참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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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 원편을 감상하는 손님,  경주 아사가 주인도 참석하였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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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차를 가지고 있다면, 남의 차를 보게 되면 비교하는 습관이 생긴다.
           외형이 다를 수 있는 여러가지 복합된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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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호는 자사차호에 넣어 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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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주인공인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복원창)’을 61g 저울 달고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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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복원창)’를 은 탕관에 넣고 우렸다.
                  이런 대범함은 신차든 노차든 다양한 차들을 많이마시고 연구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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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다옹 주인 안재한 선생은 차 맛에 대한 좋은 말씀을 주셨다. 마주 보고 앉은 우나이찌(가게이름)선생에게 옛날 7편 한 통으로 준비하고 마신 경험담을 이야기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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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찻자리에 모인 손님 가운데 상인이 아니면서 골동보이차를 통으로 준비하고 마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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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찻집 주인인 수선행님(왼쪽 첫번째), 대단한 마음이 아니면 이런 통큰 일을 벌리지 못한다.

누가 이런 분 앞에서 골동 보이차 운운하겠는가?  보이차 한 편에 시가 500만원, 800만원, 1000만원 하는 차들을 손으로 툭 잘라 차호에 넣겠는가?

일시: 2007년 7월 21일(토) 오후 7시 - 11시 종결 / 22일 02시 최종 종결

장소: 대구 수성구 지산동 1054-1 <자연주의> 찻집

 (TBC 방송국 건너편)


한국에서 이러한 찻자리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역사다. 다시 한 번 주인 부부(죽천향, 수선행)의 배려와 큰 마음에 감사드린다. 2007년 7월22일 02시 종결, 사진 기록  / 석우(石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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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마신차는 신양모첨, 동창호, 아포차, 복원창원차(福元昌圓茶),황문흥동차

참석자는 부산, 서울, 안양, 울진, 대구, 김천에서 모인 17명이다.

나는 10번 중 9번을 참석하였다. 이 기록을 한국의 현대 찻자리에 기록을 남기고자 처음부터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 참석하게 되었다. 혹시 저의 사진 작업이 참석자에게 누가 되었다면 용서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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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차(茶)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기호 식품이다. 하지만 커피와 달리 차는 예(禮)를 갖추는 일을 중요히 여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음식에서 예로 발전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0년 동안 차와 함께 하며 살아왔다. 부산, 대구, 서울 등의 웬만한 차인들의 행다법을 지켜봐 왔고, 때로는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회원권을 구입하며 준비된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기도 수차례 해왔다.

각 차회의 행다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정도로 수 없이 많은 사진 촬영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이런 일에 이만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 하는 후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그러한 시간들이 다 소중하고, 그들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 차문화의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문화의 한 분야가 발전하기까지는 그 분야 관계자들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속된다.

차인의 눈으로 봤을 때도 행다 절차는 까다롭고 어렵다. 다른 사람의 진지한 행다례 발표를 보면서 ‘춤추는 것 같다’ ‘너무 외형적으로 치우친다’고 폄하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자는 한복 입고 폼 잡는 것 때문에 차문화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누군가는 ‘과도기’라 이름 짓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기라 명명한다고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미래로 향한 중요한 길에 놓여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학문으로 그 깊이를 논하고, 차를 연구하는 학자는 차의 품종을 연구하여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면서 다 함께 가야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분명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외형적 치우침이라고 매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 긍정적 대안이 아니다. 좋은 대안을 놓고 함께 연구하고 노력한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차회의 흠집 내기 발언보다는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을 때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행다 발표에 있어서는 그 동안 수련했던 것을 자신 있게 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보자. 태권도가 세계인의 스포츠로 자리 매김 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태권무(跆券舞)라는 것도 생겨났고, 한편에서는 전통 태껸을 지켜온 이도 있었다. 무엇이 원류이고, 무엇이 본질인가? 문화는 다양성의 산물이다. 문화가 물이라면 시대의 삶은 그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변화면 물은 거기에 비추어 유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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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주에 걸쳐서 매주 점촌에 내려가서 점촌과 문경지역의 전통 장작가마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였다. 그 곳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실측을 하면서 지난 2004년 <사기장이야기>를 발표하기전의 가마 구조와 조금씩 달라진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사기장들이 그만큼 연구를 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이다. 2004년 부터는 문경지역의 차도구에서는 큰 변화를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답습의 연속에서 정체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전통 흑유다완을 만들고 연구하는 사기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목다완이 아니라 천목이 완성되기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무광택에 가까운 한국의 고려흑유는 유적천목과 같이 광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질감이 투박하며 소성후 유약의 변화가 감칠 맛이 나는 것이다. 철분이 많은 분청소지로 만든 이 흑유 다완은 현재로서은 다완으로서의 성형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온 것 중 하나인 흑유를 소재로한 찻그릇의 개발은 정체되어 가는 지역에서 활역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사기장이 만들어 놓은 여러 점을 보면 중국의 천목 다완과 비슷한 형태는 한 눈에 의도된 것으로 보이면서 우리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 보였다. 현재 흑유로 만들어진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의 다완 형태(웅천에서 만들어진 다완)로 보이는 것에 오히려 더 정감이 갔다. 이렇게 만들어 진 것을 보면 사토질이 많은 흙으로 설익어 나온 다완을 무조건 이도다완이라고 흉내내어 만들진 것을 보다가 찻그릇의 변화와 전통을 볼 수 있는 사기장을 만났을 때 장작 가마를 조사하는 과정의 힘들고 어려운 마음에 위로가 되고 흥이 났다. 그것은 분명히 끊어졌던 전통이었다. 그런데 문경 땅 안에 숨쉬며 싹이 돋아 나고 있었다. 진정 그칠 줄 모르는 우리의 예맥을 또 한번 확인했다. - 2007년 7월 19일 석우.

  3주간 조사한 장작가마는 문경요 포암요 갈평요 황담요 월봉요 가은요 부광요 고려천목요 주월요 묵심요 백두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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